소동파가 고려를 비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흔히 소동파로 알려져있는 소식은 고려에 대한 안좋은 점을 늘어놓으며 고려와의 관계를 다시 살펴야한다고 주장했는데 그가 이런 주장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동파가 살던 시기의 동아시아는 고려와 북송, 거란이 각축했다. 북송 서쪽에는 서하도 건재했기에 동아시아 국제정세는 4강 체제였다. 고려와 송나라는 우호 관계였다. 거란의 압박에 국력이 약화된 북송은 고려를 크게 의식했다. 나라의 살림에 문제가 될 정도로 고려 사신을 환대했고, 고려의 외교관은 상대적으로 고자세였다.
이를 굴욕외교로 여긴 소동파는 반 고려 입장에 섰다. 이 무렵에 거란은 송나라를 치기 위해 고려를 침공했다. 그런데 소동파는 거란과 고려의 전쟁 사실도 모른 체 고려를 오랑캐로 칭하는 개인적 편견과 적대감을 드러낸다. 그는 상소문인 ‘논고려진봉장(論高麗進奉狀)’에서 “고려 사신 접대를 위해 사관을 짓고, 배를 건조하느라 농민 어민 상인들이 병이 날 정도로 힘들어한다. 나라에는 조금의 이득도 없는데, 오랑캐는 엄청난 이득을 얻는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동파는 당시 고려의 문신들 혹은 글을 좀 안다는 학자들이 아주 흠모하는 인물 이였습니다. 소동파의 시는 고려 시대에 교과서와 같은 명문 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학문을 배우고자 했고 칭찬 했습니다. 하지만 소동파 본인은 고려인들을 오랑태 이며 도적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매년 고려가 송에게 조공을 보낼 때 가져오는 것은 하찮은 물건인데 오히려하사품으로 송으로부터 받아 가는 것은 너무 많다 라는 점을 지적 해서 왕에게 3차례에 걸쳐 상소문을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도 이해가 가는 것이 당시에는 조공을 바치는 국가가 사실 조공을 받는 국가 보다 몇배나 되는 재물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동파는 고려를 혐오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를 지원하는 제반 사업에 송나라
황실의 내탕금이 사용되었고
이렇게 고려에 대한 지원이 비밀리에
확대되면 될수록 소동파의 독설은
심해져 증오에 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