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은 급진적 개화파들인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에 의해 이뤄졌으나 3일만에 청나라 군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정권 장악 후 박영효와 서광범이 각각 전후영사 좌우영사를 맡아 곧바로 4영 군사 2천명을 동원해 궁궐 숙위를 담당케하여 청나라군에 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평소 청나라식 훈련을 받았고 전후영군과 대립하고 있었던 좌우영군의 포섭과 장악을 소홀히 한 결과 이들은 이반하여 청나라군에 협조하였습니다. 아울러 총 칼 등 무기를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것과 일본군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도 정변 실패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중들을 설득하지 못한 결과 민중들의 협조를 받지 못한 것이 주 실패 요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