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 효공이 죽은 후 귀족들의 반격으로 상앙은 거열형에 처해졌지만, 진 혜문왕은 상앙의 변법을 되돌리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상앙 변법의 성과를 깊이 인식했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이후 6대 군주가 계속되며, 진왕 영정은천하 통일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대진정국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상앙은 개인의 안위를 고려하지 않고 세상의 여론도 무시하며 변법을 추진하는 특징을 보였습니다. 또한, 인사 문제부터 처리하지 않고 일심으로 변법에 집중하였으며 초기에는 귀족들의 반발로 진효공의 독자였던 태자 진사를 앞세워 반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태자의 태부와 태사를 엄벌하는 등 강력한 대응을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