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갑작스러운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된 후 패퇴를 거듭하던 한국군과 미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전면적인 반격으로 전환합니다. 9월 28일 서울을 탈환,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하자 김일성은 산악지대인 평안북도 강계로 달아나 그곳을 임시수도로 정하고 소련과 중국에 지원을 요청, 중국은 10월 25일 중국인민지원군을 창설해 북한군과 연합사령부를 구성,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전합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뒤 동부전선을 맡은 미 제 10군단의 군단장 알몬드 중장은 부대를 세 방향으로 나누어 진격시키는데 국군 제 1군단은 동해안을 따라 진격해 10월 10일 함경남도 원산을 점령 후 두만강 유역까지 계속 나갔고 10월 29일 이원에 상륙한 미 제 7사단은 부전호와 압록강 유역의 혜산진 방면으로 진격, 10월 27일 원산에 상륙한 미 제 1해병사단은 개마고원의 장진호 방면으로 진격합니다.
그러나 11월에 들어서면서 중공군과의 전투가 본격화되면서 압록강 유역까지 진출했던 유엔군은 청천강 유역으로 물러났고 동부전선에서도 11월 8일 무렵 중공군이 전투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알몬드 중장은 휘하의 부대들에게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으로 더욱 신속히 진격할 것을 명령, 11월 21일 미 제 7사단 제 17연대는 압록강 유역의 혜산진까지 진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