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조조는 동탁토벌이후 왜 유비를 죽이지 않았나요
안녕하세요 조조는 역사적으로 간웅이라고 할 정도로 머리가 빠른 사람 중에 하나였는데요 동탁토벌이후 유비를 죽일 수 있는 순간이 많이 있었는데 왜 죽이지 않고 역사의 후환을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엔 그 누구도 유비를 라이벌로 보지 않았습니다.
군사력? 물론 장비와 관우의 무력이 뛰어나긴 했지만
제대로된 책사도 없고 의용병(말그대로 무기만 든 농민) 몇백명 정도만 끌고다녔습니다
권력? 유비가 가진 권력은 그냥 지방 유명인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도
장비가 돈좀 있는 지방이고 관우가 유명한 무장이라서 있는거라 유비 본인은....
황실 친척이다? 유비는 황족 이라고 말하기도 힘들정도로 방계중에 방계라서
아예 사칭해도 문제 안될 정도의 혈통이라 사칭한거 아니냐는 설도 있을 정도 였습니다.
심지어, 삼국지 정사 기준으론 동탁토벌전에서 유비군의 활약 자체가 안나옵니다.
그냥 "조조군에 있었다가 져서 공손찬한테로 튀었다" 정도로만 적혀있죠
관우가 적장을 단칼에 배어서 술이 안식었다느니 하는 활약은 전부 야사나 연의에 나오는 겁니다
이런데 누가 이 사람이 촉나라를 세울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제갈량도 그때 유비를 만났으면 등용 안됬을 겁니다.
조조 입장에선 그냥 시골의 황족(자칭)이 몇백명이나마 병력(허접함) 데리고 찾아와 준건데
고맙긴 하지만 하찮은 사람이니 힘들여서 죽일 이유도 없었죠.
장비나 관우같이 탐나는 장수들은 그냥 유비 채로 먹어버리는게 편하기도 하구요
물론 서주 대학살 때 쯤이면 주목 한두번 쯤은 해서 작게나마 세력이라 할만해지긴 하는데
그때 유비는 여포를 홀라당 속여 넘긴 공으로 좌장군자리를 받았습니다.
자기 도와줘서 좌장군씩이나 하게 해줬는데 그걸 바로 죽인다?
서주 대학살로 흔들린 명분을 천자모셔서 겨우 채웠는데 그걸 다시 날려 먹는 짓이죠
그 후로도 여러 세력을 왔다 갔다 하면서 좀 거슬리는 행보를 보이긴 하지만
결국 제갈량을 얻고 입촉하기 전까지 유비는 떠돌이 군소군벌 중 좀 유명한 사람 정도에 불과했으니
조조입장에선 견제할 이유를 못느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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