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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남생이120
조용한남생이12023.04.03

정말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을 먹으라고 했나요???

최근까지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한다면 악녀로 알고 있었는데 어떤 영상을 보았더니 사실 아니라고 하더군요.마리앙뚜아네트는 어떤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악녀 소리를 들은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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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8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3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마리 앙뜨와네뜨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만큼 음탕하고 사치스러운 여자는 아니였습니다. 그녀는 왕비이기 이전에 비운의 여자였습니다. 그녀에 대한 자료는 극히 적으며, 흔히 알려져 있는 부정적인 이야기(빵이 없다면 고기를 먹으라 혹은 쿠키를 먹으라)들이 혁명정부가 퍼뜨린 소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녀는 프랑스의 적국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사람이었는데 그녀와 루이 16세의 결혼은 정략적인 결혼이었습니다. 그러나 둘은 취향도 성격도 정 반대였죠. 정략결혼이 결정되자 간신히 의사소통을 할 정도의 불어만 할 줄 알았다고 합니다. 또 마리앙투아네트는 천성이 가볍고 천진난만했다고 합니다.

    또 마리는 베르사유궁의 생활을 힘들어 했고 허례허식을 싫어했습니다. 예의 범절과 격식등이 까다로운 베르사유궁은 합스부르크가와는 많이 달라기 때문이기도했고 그녀 자체가 좀 자유분방한 면이 있어서 였기 때문이었을거라고합니다.

    그녀가 귀족들과 사이가 안좋았던 이유 중 몇가지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왕비가 옷을 갈아 입을때 최소한 네명이 필요한데 마리앙투아네트의 경우 옷 갈아입을때 수행원이 20명이나 있었다고하네요. 이런 복잡한 절차가 있었는데 그녀는 이를 무시하고, 전문적인 디자이너 한명과 옷을 골랐고 이를 본 귀족들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다고합니다.

    또 그녀는 옷차림도 사치스러운 옷보다는 편안하고 소박한 옷을 좋아했으며 당시 초상화중에 하얀옷에 밀집모자를 쓴 그림이 있는데 당시 사람들은 왕비가 이런 속옷 수준인 실내옷을 입은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합니다. 그리고 당시 왕족들은 개방된 자리에서 저녁 식사를 해야 했는데 그녀는 이런 격식과 허례허식인 관례행사에 나가는것을 싫어했다고합니다. 그녀는 이처럼 답답한 생활을 싫어 했고, 오히려 서민들의 생활을 신기하게 생각했으며 심지어 정원을 만들고 직접 우유를 짜기도 했다고합니다.

    그녀는 그다지 사치스럽지도 않았습니다.

    정작 문제는 천진난만하고 격식을 따지지 않는 성격이었죠.

    그녀는 친분이 있는 몇명 귀족 하고만 연회를 열었고 왕도 그녀의의허락이 있어야만 트리아농궁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녀가 오스트리아 여자라는 이유로 이런 사소한 문제들도 탐탁치 않게 여겼고 이상한 소문을 냈습니다. 음탕한 짓을 한다 뭐 이런 소문이었죠. 하지만 당시 선입견을 제치고 보면 마리는 권위적이라기 보다는 섬세하고 우아했으며 가족적이고 따스한 생활을 꿈꿨습니다.

    그러던중 혁명이 일어나고, 그녀가 오스트리아에 몰래 편지를 보내 스파이짓을 하고 전쟁을 사주했다는 등 뒤에서 왕을 조정하면서 판단을 흐리게 한죄 트리아농궁에서 온갖 사치를 하며 국민의 세금을 탕진한죄 등의 이유로 그녀는 기소당합니다.

    그런데 이런한 죄에는 충분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재판이 미뤄집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세간에 떠도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까지 끌여들여서 방탕하고 질퍽한 파티를 즐겼다고, 또 엉뚱하게도 그녀의 일곱살된 왕자에게 성적유희를 가르켰다는 증언을 강요하였고 겁먹은 루이17세는 이러한 증언을 하게 되지요. 당시 배심원을 비롯해서 재판에 참석한 자들은 열성적인 혁명 지지자들이였고 결국 결과는 사형에 처해집니다.

    그러나 그녀는 마지막 까지 당당했으며, 담담했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어느집이나 합스부르크와의 전쟁에서 죽은 가족이 한명씩은 있었다고 하니 그녀의 조국인 오스트리아를 얼마나 프랑스 사람들이 싫어했고 마리앙투아네뜨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아실겁니다. 마치 우리나라에 일본 여자가 왕비가 된 격이었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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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진의 2대 황제 혜제가

    쌀이 없다면 고기죽이라도 먹여라 라는 말을 한 적 있습니다

    문제는 혜제의 지적 상태가 안습이라서..


    마리 앙트와네트가 했다는 말은

    저들에게 브리오슈를 먹여라 입니다

    브리오슈는 빵과 케이크의 중간쯤 되는 과자입니다

    버터와 우유 계란 마른 과일 등이 들어간 고급 빵과자로

    귀족들이 식사 시 먹었던 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 말 자체를 마리 앙트와네트가 한 적 없다는 말입니다

    실제 저 말의 출저는

    루소의 회고록이고

    의도 역시

    술 안주로 빵 찾는데 브리오슈가 떠올랐고

    브리오슈 하니까 저런 말 한 개념 잇는 공주가 있었는데..

    안주로 브리오슈나 먹자 입니다


    이 말이 프랑스 혁명기 와전되어

    앙트와네트의 발언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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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실제로는 프랑스 왕비치고는 오히려 매우

    검소한 편이었으며 선량하고 동정심 많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사교적이었고 만나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사근사근했으며,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편견없이 사람을

    대했다. 루이 16세가 사냥 중에 농민을 다치게 하자, 직접 달려가서 간호해주고 모든 손해를 물어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출처: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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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효진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외국출신의 왕비를 비난하려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지금알려진 설들은 대부분 와전된 것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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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리앙투아네트를 죽게 만든 가장 큰 이유라 일컬어지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망언은 그런말을 한적이 없습니다.

    장자크루소의 참회록에 등장하는 말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비라며 그녀를 비난하던 사람들이 여기서 따와 나쁜 소문을 퍼뜨렸고 이것이 혁명단에 의해 덧붙여지면서 말도 안되는 헛소리만 하는 멍청이로 폄하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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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리앙투아네트가 그런 말을 한 기록은 없습니다.


    빵이 아니면 고기.. 이 말은 아에 근거도 없고


    번역이 잘못된것도 아니고 그냥 비난을 위해


    만들어진 헛소문 입니다.


    그렇다면, 빵이 아니면 케이크? 이 말도


    앙투아네트 훨씬 이전에


    한 철학자의 참회록에 써있는 글이라고 합니다.


    그럼 이 말이 왜 나왔느냐??


    앙투아네트 이전의 왕비가 서민들이 먹을 빵이..


    (※그 지역에서 빵의 의미는 우리의 밥의 의미처럼


    식량을 의미 하기도 한답니다)


    먹을 빵이 없다하자, 그럼 브리오슈라도 줘야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던 말이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지라고 왜곡되고 그걸 앙투아네트에게


    덮어씌웠다는 설이 가장 힘을 받고 있습니다.


    대혁명시기에 귀족들에대한 반발감이 각종


    카더라를 만들었고, 당시의 대표적이라할만한 귀족


    앙투아네트를 사치와 세상물정 모르는 그런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하더군요.


    실제로 알려진것만큼 사치도 하지 않았답니다.


    혁명시기에 귀족에 대한 나쁜 소문은 부풀리고


    과장되기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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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 앙투아네트가 악녀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고 하네요.

    그 주장을 살펴보면,

    “마리 앙투아네트의 악녀 이미지는 프랑스혁명 군인들에 의해 왜곡 조작된 것이다. 그녀가 나라를 망치게 할 만큼 호화로운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녀가 왕비 자리에 있으면서 사용한 돈은 예전 왕비들이 사용한 것에 비해 매우 적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라' 는 그녀가 한 말이 아니었다. 루이14세 부인 마리 테레즈 왕비의 말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백성을 사랑했던 왕비였다. 그녀는 빠른 길로 가겠다며 농민들의 밭을 밟고 지나간 다른 프랑스 왕궁 마차와 다르게 옥수수밭을 망치지 않겠다고 다른 길로 돌아갔고 사냥을 나간 루이16세의 오발로 농부가 부상을 입자 궁에 데려와 간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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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을 먹으라고 하라"는 말을 실제로 했다는 것은 역사학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이는 후일에 생겨난 루머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판하고 비하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대표적인 여성인데, 그녀의 평판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녀는 혁명 이전에는 왕실 생활을 즐기며 화려한 의상과 생활을 즐기는 등 대중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또한 열등감을 느낀 귀족들의 지지를 받았고, 이는 대중들에게 반감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그녀는 왕실의 고압적인 권력 구조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적으로 비판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혁명 이후에는 교황의 도움으로 교도소에서 구출되었고, 자신의 가족과 함께 파리를 떠나 유럽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녀는 그 이후에 혁명에서의 고통과 어려움을 겪은 일반 국민들을 위한 자선 활동을 펼치며 행동으로 자신의 평판을 회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따라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악녀로 여겨지는 것은 그녀의 화려한 왕실 생활과 혁명 이전에 일어난 일들로 인해 일반 국민들에게 반감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이후에 자선 활동을 통해 자신의 평판을 회복하려고 노력했으며, 그녀의 평판은 역사학적으로 다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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