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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안경곰147
빼어난안경곰14723.07.17

광개토대왕비가 조작됐다는 말이 있던데 그런말이 나오는 배경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예전에 어떤 프로그램에서 보닌깐 광개토대왕비가 일본에 의해서 조작됐다는 말을 들은것 같은데 그런말이 나오는 배경은 무엇인가요? 근거가 있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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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0년대 이후 재일 사학자 이진희가 사카와가 신묘년조 기사를 변조한 탁본을 제작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비석 표면에 석회를 도포하였다는 조적설이 있었는데 석회를 바른 이유가 글자가 훼손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이것이 사실이라면 글자를 알아볼수 없다고 해서 아예 글자를 가려버리는 행위 자체가 논란이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 육군참모본부 주도로 광개토왕릉비를 훼손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 주장은 이후 일본이 직접 개입했다는 물증이 없고,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중국인 민초들에 의해 훼손되었다는 설이 나오며 상세한 진위를 알수 없게 되었으나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은 사람의 손이 닿았고 몇 글자가 변조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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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확한 근거는 없어보입니다. 비석에 적현 글자가 한자와 조금 달라서 일본에서는 이게 일본인들이 만든 가짜 한자라고 말하는데, 이거는 실제로 고구려에 쓴 고문자라고 합니다. 일본인이 만든것도 아니구요. 그리고 백제한테 이겼다고 나오는 것도 거짓이라고 주장하는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고구려가 승리했다고 나옵니다.

    이렇게 일본에 주장하는 거는 고구려가 일본의 역사라고 주장하기 위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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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17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묘년조는 "왜이신묘년래도해파백잔□□신라이위신민(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이며, 주요 논점은 '도해파(渡海破)'의 주체를 누구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자구(字句)가 일부 변조되었는지의 여부이다. 초기 연구를 주도했던 일본 학계에서는 '도해파'의 주체를 왜(倭)로 보고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 주요 근거로 삼아왔다. 그러나 정인보(鄭寅普), 박시형(朴時亨) 등 남북한 학계에서는 도해파의 주체를 고구려 광개토대왕으로 보아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였다.


    신묘년조 기사의 해석에 대한 양국의 첨예한 대립은 1972년 재일(在日) 사학자인 이진희(李進熙)에 의해 제기된 비문 변조설에 의하여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변조설에 동조하는 한국 학계는 비문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를 주장하였고, 일본 학계에서는 이를 부정하며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변조설이 대두된 지 10여 년이 지난 후 중국학자 왕건군(王健群)에 의하여 새로운 견해가 제시되었다. 그는 석회도포(石灰塗布)의 사실은 인정하나 그 주체가 일본 참모본부가 아니라 현지에서 탁본을 하던 탁공(拓工)의 소행이며, 신묘년조는 변조되지 않았으나 왜의 실체는 북구주(北九州) 일대의 해적 집단으로 보아 임나일본부설을 허구로 파악하였다.


    신묘년조는 액면 그대로의 사실도 아니며 단순한 허구도 아니다. 당시 왜라는 존재가 있었고, 이들이 때때로 한반도 남부에 출몰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의 왜는 백제나 신라를 정복할 만한 힘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비(陵碑)를 세운 고구려인들은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정복하고 신라와 가야 지역에 군대를 보낸 조치를 정당화하려고 왜의 존재를 과장함으로써 마치 이들이 백제나 신라를 정복한 것처럼 비문에 새겨 놓았던 것이다.

    출처 : 한국 미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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