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테스티아입니다.
사실상 흥선대원군과 민비(명성황후 민씨)와의 갈등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흥선대원군은 보다 강력한 쇄국정책을 통해 조선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쪽이었고, 명성황후는 근대화에 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점에서 '국정 운영을 어떻게 해나갈 것이고, 대외정책을 어떻게 펴나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달라 갈등이 빚어졌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고종은 원래 왕위계승에서 멀어진 인물이지만, 세도정권이 끝나고 흥선대원군에 의해 왕위에 올랐지요. 1863년의 일입니다. 고종이 즉위하고 성장하면서 아버지가 실질적인 정사를 펼치는 것과 대외위기 고조에 따른 쇄국정책 등에 대한 반발도 많았습니다. 개화파들은 개방을 통해 근대문물을 수용하길 바랐는데 고종의 비인 민비와 민씨세력 등과 연결되어 있었고, 이에 고종이 아버지를 실각시키고 친정을 선포하고 민씨세력과 개화정책을 펼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