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종 임금이 그렇게 여색을 밝혔다는데 사실인가요
조선시대 전기 성종 임금은 경국대전을 완성한 은돈 명군이 틀림 없는데요 그러나 밤이 되면 술과 여색을 빠졌다는 이야기를들은 바가 있습니다 왜 이런 소문이 생긴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많은 후궁과 20여명의 자녀를 낳은 것으로 보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성종은 1467년(세조 13) 한명회(韓明澮)의 딸인 공혜왕후(恭惠王后) 한씨와 결혼했으나 그녀가 1474년(성종 5)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자 1476년(성종 7)에 봉상시(奉常寺) 판사 등을 역임한 윤기견(尹起畎)의 딸 제헌왕후(齊憲王后) 윤씨를 계비(繼妃)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1479년(성종 10)에 세자 융(뒷날의 연산군)의 생모인 제헌왕후 윤씨를 폐비하고 윤호(尹壕)의 딸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를 다시 계비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1482년(성종 13)에 폐비 윤씨를 사사(賜死)하였는데, 이 일은 뒷날 연산군 때에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성종은 이외에도 명빈 김씨(明嬪 金氏), 숙의 김씨(淑儀 金氏) 등 수많은 후궁(後宮)을 두었으며, 그들과 20여 명의 자녀를 낳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종 [成宗]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성종은 38세의 나이에 16남 12녀라는 어마어마한 자식들을 두었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퍼진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종은 야음을 틈타 궁궐 밖으로 자주 나들이를 갔는데 술과 여색을 밝혔습니다.
세간에는 성종을 일러 주요순 야걸주라 일컬었는데 낮에는 요순과 같은 성군이요, 밤에는 걸주와 같은 호색한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성종은 술과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오산설림초고에는 성종이 함경도 영흥의 이름난 기생 소춘풍과 얽힌 이야기가 나오는데,
봄바람에 웃는다는 이름의 소춘풍은 절색이라는 소문이 자자했고 이 소문이 성종에게까지 들려 성종은 그녀를 불러들여 후궁으로 삼으려했습니다.
성종이 궁중별전에서 소춘풍과 술잔을 기울이며 그녀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오늘밤은 너와 함께 하고 싶은데 너의 뜻은 어떠하냐?
소춘풍은 후궁이 되어 달라는 왕의 제의를 거절합니다. 그녀는 후궁이 되면 평생 다른 남자와 정을 나눌수 없어 궁궐생활이 싫다고 하였고, 성종은 이 말을 듣고 웃으며 밤새 술을 마시며 그녀와 시를 주고받았다고 하는데, 왕이 궁궐에 기생을 불러들여 논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