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표범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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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때 조총의 위력은 상당했나요?

임진왜란때 왜군들이 조총으로 위협했을때 한양에 20일만에 점령당했을때 조총을 무력화할수있었던 방법은없었는지 기병이라면 조총도 무력화시킬수있지않은지 조선이 그때 보병만있고 무력이쎈 기병들은 별로없었던건가요?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화약을 이용한 총이나 대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기병을 압도록만한 병과가 없을 정도로 기병은 최강이었습니다

    조선에서는 조총에 대한 대비를 사실상 안했다시피해서 조총의 위력이 더 강력했지요.

    실제로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의 기병대가 일본의 보병(조총)군에게 궤멸되었습니다.

  • 조총은 일본이 포르투갈을 통해 1543년경 처음 들어온 화기였고 1590년대에는 이미 대량생산 체제와 사격 전술이 완성돼어 있었습니다. 사정거리 약 100~150mm이며 관통력 강하기 때문에 집단 사격 시 심리적, 전술적 충격이 컸을 정도로 상당한 위력을 가진 무기 였습니다. 조총을 무기력화할 수 있는 전술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가장 많이 사용된 전술은 기병 돌격으로 재장전 시간 15~20초 이상 걸리기에 빠른 기병 돌격으로 무력화시켰고 방패병과 활병조합으로 방패를 든 병사가 앞에서고 활을 든 병사가 뒤에서 쏘는 방식으로 물리쳤으며 야간이나 기습으로 무력화 시키기도 했습니다.

  •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조총은 조선군에게 매우 위협적인 신무기였습니다.

    조총은 화살보다 사거리가 길고 관통력이 높아 전투 초반 보병 중심의 전력으로는 대응이 어려웠습니다.

    조선 기병 전력은 약했고 화초나방채 진형을 활용한 전술적 대응도 초기에는 미흡했습니다.

    조총의 약점인 장전 시간을 노려 기병으로 돌격하거나 방진으오막는 방법이 있었지만 일본군은 이를 대비해 창병과 사수의 협동 진형을 운용했습니다.

    조선은 전쟁 중기 이후 화포, 조총 , 기병을 결합한 훈련도감 체제로 바꾸며 대응력을 높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