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설치한 임시로 설치한 비변사는 어떤 기관이었나요?
중종 때에 남북 변방에서 발생하는
국방관계의 긴급한 사안을 대처하기 위한 임시기구로 설치한 것이
비변사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비변사는 어떤 기관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비변사는 조선후기 국방과 군사에 관한 기밀뿐 아니라 국정 전반을 총괄한 최고의 기구이다. 중종 대에 남북 변방에서 발생하는 국방관계의 긴급한 사안을 대처하기 위한 임시기구인 지변사재상(知邊司宰相)을 고쳐 비변사를 설치하였다. 이후 명종 대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자 정식기관이 되었으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그 기능이 강화되어 조선후기 국정을 처리하는 최고관부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비변사는 1865년(고종 2) 3월 의정부와 통합되어 폐지되었다. 이칭으로 비국(備局), 주사(籌司), 주당(籌堂), 묘당(廟堂)이라고도 하였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군사와 관련된 중요 업무를 의논해 결정하던 회의기구로, 임진왜란 때 권한과 기능이 강화 된 후 흥선대원군이 원래대로 축소하기 전까지 나랏일을 결정하는 최고 기구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후기 국가비상대책 협의기관이자 국정최고의결기관으로, 비국(備局), 주사(籌司)라고도 하였다.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임시비상대책기구로 비변사를 만들었는데, 이후 외침이 있을 경우 종종 비변사를 설치하였다. 점차 설치 빈도가 늘어나면서 의정부와 육조를 능가할 정도의 기관으로 성장하였다. 1554년(명종 9) 독립된 합의기관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을묘왜변(乙卯倭變)을 계기로 별도의 청사를 마련하고 관제상의 정식 상설관청이 되었다. 그러나 이 때까지는 비록 정일품 아문이기는 했지만, 변방의 군사문제를 협의하는 것으로 업무가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을 계기로 군사는 물론 정치, 경제, 외교, 문화를 총괄하는 기관으로 변모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의정부와 육조를 주축으로 하는 국가체제는 비변사 중심의 체제로 바뀌어 조선 후기 내내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1864년(고종 1) 전제왕권의 회복을 목표로 하였던 흥선대원군에 의해 비변사를 폐지하여 의정부의 속사로 삼고 종래 업무는 의정부와 삼군부(三軍部)로 이관하였다. 비변사의 관원은 별도의 정원이 없는 정일품 도제조, 정이품 이상 제조, 정삼품 당상관 부제조 아래 종육품을 낭청(郎廳) 12명으로 구성되었다. 낭청 중 4명은 문관인데 그중 1명은 병조 무비사(武備司)의 낭관, 나머지는 시종(侍從) 중 선발하여 겸하도록 하였다.
무관 8명은 칠품 이하의 관원이 겸하게 하고, 임기가 지나면 육품으로 승진시켜 주었다. 그 밖에 잡무를 맡아보는 서리 16명과 서사 1명, 수직군사, 사령 26명이 있었다. 비변사의 당상관은 시기에 따라서 인원이 달랐고, 반드시 포함되도록 규정된 관직도 자주 변경되었다. 그러나 군사에 정통한 당상관 3명을 선출하여 늘 출근하여 업무를 처리하게 했는데, 이를 유사당상(有司堂上)이라 하였다. 1713년(숙종 39) 이후에는 각도에 한 명씩 팔도구관당상(八道句管堂上)을 두어, 전국의 군사업무를 나누어 담당하도록 하였다.
출처 : 화성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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