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황진이의 활동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황진이가 지은 한시에는 「박연폭포(朴淵瀑布)」 · 「만월대회고(滿月臺懷古)」 · 「봉별소판서세양(奉別蘇判書世讓)」 등이 전하고 있다. 시조 작품으로는 6수가 전한다.
이 중에 「청산리 벽계수야」 · 「동짓달 기나긴 밤을」 · 「내언제 신이없어」 · 「산은 옛산이로되」 · 「어져 내일이여」의 5수는 진본(珍本) 『청구영언』과 『해동가요』의 각 이본들을 비롯하여 후대의 많은 시조집에 전하고 있다.
「청산은 내뜻이요」는 황진이의 작품이라 하고 있다. 그러나 『근화악부(槿花樂府)』와 『대동풍아(大東風雅)』의 두 가집에만 전하며, 작가도 『근화악부』에는 무명씨로 되어 있고, 『대동풍아』에서만 황진이로 되어 있다. 그리고 두 가집에 전하는 내용이 완전 일치하지도 않는다.
특히 초장은 『근화악부』에서 “내 정은 청산이요 님의 정은 녹수로다.”라 되어 있다. 『대동풍아』에서는 “청산은 내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라고 바뀌어 그 맛이 훨씬 달라졌다. 『대동풍아』는 1908년에 편집된 책이고 작가의 표기도 정확성이 별로 없는 가집이라는 점에서 그 기록이 의문시되고 있다.
황진이의 작품은 주로 연석(宴席)주6이나 풍류장(風流場)주7에서 지어졌다. 그리고 기생의 작품이라는 제약 때문에 후세에 많이 전해지지 못하고 인멸(湮滅)주8된 것이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전하는 작품은 5, 6수에 지나지 않으나 기발한 이미지와 알맞은 형식과 세련된 언어구사를 남김없이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사전 황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