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재위한 적이 없는 익종은 추존왕인데 종묘의 정전에 배향된 이유는?
네 살 때 왕세자에 책봉되고 열 살 때 풍양 조씨 가문 신정왕후와 부부의 연을 맺었으나 국왕을 대신해 대리청정한 지 3년만인 스물 한살에 세상을 떠난 효명세자가 종묘의 정전에 배향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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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김예림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익종은 1830년
대리청정 도중 세상을 떠나 효명이라는
시호가 내려져, 효명 세자로도 불렸습니다.
이때까진 묘도 릉이 아니라 묘였죠.
그런데 1834년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른 후
익종으로 추존되었고
대한 제국이 선포된 1899년
고종이 익종의 양자 자격으로 즉위했기 때문에
그를 직계 5대 조상으로서 다시 문조 익황제에 추존했습니다.
정식명칭은 체원찬화석극정명성헌영철예성연경융덕순공독휴홍경홍운성렬선광준상요흠순공우근탕정계천건통신훈숙모건대곤후광업영조장의창륜행건배녕기태수유희범창희입경형도성헌소장치중달화계력협기강수경목준혜연지굉유신휘수서우복돈문현무인의효명익황제 입니다..
엄청나죠?
시호와 존호를 수차례 올리며 존경을 표하고
본인의 정통성을 강화하고자하는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후 그의 신위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에 봉안됐으며 묘도 '수릉'으로 이름이 격상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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