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창백한 푸른점
창백한 푸른점24.01.28

정도전은 왜 죽임을 당한건가요?

조선건국의 일등공신이라고 하는 정도전은 왜 삶의 끝이 죽임을 당하는걸로 끝이난건가요? 정도전은 조선에서는 추앙해야할 인물아닌가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개국공신입니다. 그런데 정도전은 재상 중심의 정치를 이상으로 생각하였으며, 태조의 막내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군권 장악을 위해 왕자들과 공신들의 사병을 혁파하려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정도전의 정책에 이방원은 반기를 들어 1398년 1차 왕자의 난을 통해 방석과 정도전을 역모자로 몰아 제거하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4.01.28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도전은 왜 죽었는지가 궁금하군요.

    1398년 1차 왕자의 난에서 정적인 이방원에게 살해되면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는 그의 최후는 매우 비굴한데 이방원에게 "예전에 정안군(태종 이방원)께서 저를 살려주셨으니 이번에도 저를 살려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빌자 이방원은 "네가 조선의 봉화백이 되고도 그리 부족하냐? 어째서 이 지경으로 악행을 저지르느냐?"라고 일축하며 베어버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의 죄목은 반역을 꾸몄다는 역모죄가 아닌 종친들을 이간질시키고 해하려 했다는 종친모해죄였다고 합니다.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끌려가기 전에 '침실 안에서 단검을 쥐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물론 실록 기록에서는 '단검을 쥐었어도 소심한 모습으로 걸어나왔다'고 하고 '곧 이방원의 종자 소근의 호통을 듣고 단검을 버린 뒤 끌려나와 비굴한 최후를 맞았다'는 기록으로 이어지지만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했다는 사람이 단검을 왜 쥐고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 기록도 정도전이 끝까지 저항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는 해석도 있으며 최후의 비굴한 모습은 정도전을 비하하기 위한 기록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봉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의 전폭적인 지지로 조선의 정치 사회 문화 등을 성리학적 관점으로 조성해간 일등공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왕권을 강화하고자 한 태종 이방원에게는 신권을 강화하려는 정도전이 눈엣가시였기 때문에 결국 왕권강화를 위해 정도전을 제거한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도전과 같은 경우 태종 이방원과

    정치적인 적이었기에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데

    방해가 되는 등 이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