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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들어 왜인이 자주 소란을 일으키는 가운데 3포 왜란 과 을묘왜변이 일어났습니다. 조선은 국방 문제를 담당하는 비변사를 설치하였지만, 국방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였습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 시대의 분열과 혼란을 수습하고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정권 안정을 도모하고 대륙 진출 야욕을 이루기 위해 조선을 침략하였다(임진왜란, 1592)
조선은 왜란으로 인명 피해와 국토 황폐화, 문화재 소실 등 큰 피해를 입었지만, 견고한 사족 중 심의 지배 질서와 명과 후금의 대결에 따른 세력 균형을 배경으로 기존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지배층을 중심으로 ‘나라를 다시 세워준 은혜’를 입었다며 명을 숭상하는 관념이 확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