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고려중기부터 유교의 영향으로
족내혼에 대한 규제가 나타나기
시작하다가 원간섭기인 1309년(충선왕 즉위년)에 족내혼을 금하는 법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공민왕의 반원정책과 더불어 일시 부활되었다가,
공민왕 사후 정국이 어려워지고 고려가 멸망함으로써 왕실 족내혼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