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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소사
믿소사23.03.27

빈대떡이라는 말은 언제 생겨난 말인가요?

빈대떡은 처음부터 빈대떡이라고 했을까요?

빈대라는 말이 안 좋은 말로 알고 있는데, 빈대떡은 왜 빈대떡이 되었을까요?

또 빈대떡은 전에 가까운 요리로 알고 있는데, 왜 빈대떡이라는 이름이 붙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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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스타박스입니다.

    빈대떡이라는 명칭이 붙지는 않았지만,

    조선시대에 중국전병인 빙쟈(餠子)가 건너와서 우리식발음인 병자로 불렀는데

    녹두를 갈아 기름에 붙이는 이 병자라는 음식 조리법이 음식디미방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음식디미방은 1600년경 조선 시대 안동 지역의 어느 양반네 종가집에서 대대로 며느리들과 딸들에게 전래의 음식 조리법을 물려주기 위해 저술한 요리책입니다.

    다만 그 당시 병자의 조리법은 지금 처럼 다양한 재료를 넣어 푸짐하게 부치는 것이 아니라

    갈은 녹두를 매우 얇게 지져, 제사상 등의 기름에 지진 고기를 높이 쌓을 때의 밑받침용으로 쓴 다음, 제사가 끝나고 하인 등에게 먹으라고 준 음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명칭도 병자에서 가난한 하인들이 먹는 요리라고 하여 빈자(貧者)떡이 되었다가 이것이 빈대떡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당시의 세도가에서 이를 만들어 남대문 밖에 모인 유랑민들에게 “어느 집의 적선이오.” 하면서 던져주었다고 하는데, 역시 또 다른 양반 종가집 내에서 전해지는 요리책인 ≪규곤시의방 閨壼是議方≫·≪규합총서 閨閤叢書≫에 수록 빈자떡의 제법을 보면, 지금같이 독립된 먹거리였다기 보다 여전히 얇은 전병에 더 가까웠다고 합니다.

    이후 갈은 녹두가루에 여러가지를 섞어서 지져내기 시작했는데, ≪규곤시의방≫에서는 껍질을 벗긴 녹두를 가루내어 되직하게 반죽하여 번철의 기름이 뜨거워지면 조금씩 떠놓고 그 위에 꿀로 반죽한 팥소를 놓고 그 위를 다시 녹두반죽으로 덮어 지진다고 나와있고, ≪규합총서≫에서는 같은 방법이지만 위에 잣을 박고 대추를 사면에 박아 꽃전모양으로 만든다고 나와 있습니다.

    지금의 빈대떡은 달고 화려하며 향기로운 떡이 아니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팥소 대신 고기·채소 등을 섞어 만드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쌀농사가 힘든 북쪽 지방에서 주로 만들어먹었는데, 특히, 평안도의 빈대떡은 그곳 명물 음식의 하나로 지금 서울의 빈대떡에 비하여 크기가 3배나 되고 두께도 2배에 달하는 음식입니다.

    점차 이북지역 음식으로 발전하던 빈대떡이 본격적으로 아래지방에도 퍼진 것은 해방 전후 였습니다.

    1960년대 이전까지 녹두가 주원료인 빈대떡은 밀가루가 주원료인 다른 부침개보다도 저렴한 편이었으습니다, 그래서 그 때까지는 빈대떡은 값싼 음식의 대명사였었지요.(돈없으면 집에가서 빈대떡이나 붙여 먹지라는 빈대떡신사란 노래가 1943년에 나왔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요즘에는 녹두 값이 되려 밀가루보다 훨씬 비싸져서, 더 이상 옛날처럼 마냥 저렴한 부침개 요리 취급을 하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특히 빈대떡에 맛을 제대로 내려면 돼지고기를 갈아 넣어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더 비싸지고 있지요.


  • 안녕하세요. 정중한해파리168입니다.

    본시 빈민들이 부유한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먹고 남긴 돼지기름과 남은 고기 찌꺼기를 응용한 요리로서, 돼지기름을 두르고 고기 찌꺼기와 녹두 반죽을 섞어 부쳐 최대한 돼지고기의 맛을 구현하려 했던 것이 그 시초이다. 실제로 돼지기름을 둘러 제대로 구우면 돼지고기 맛이 난다고 한다. 그리고 녹두는 단백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사실상 진짜 고기를 먹는 것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영양분포가 특징.

    빈대떡이 최초로 등장한 기록은 1517년 빙져라는 이름으로, 녹두와 찹쌀을 갈아서 부친 전으로 소비되었다. 당시 평안도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서 주로 먹던 간식으로, 황해도에서는 막부치, 평안도에서는 지짐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빈대떡이 본격적으로 아래지방에도 퍼진 것은 해방 전후이다. 당시 서울에서는 빈대떡의 필수요소인 돼지기름없이 녹두와 야채만으로 값싸게 먹었는데, 이를 두고 평안도나 황해도 사람들이 돼지고기는 커녕 돼지기름도 없는 것이 어찌 빈대지짐이냐고 비웃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