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는 의병활동 전에 무엇을 했습니까?
안녕하세요? 우리나라에서 없어서는 안될 분인 안중근 의사의 의병활동을 하기전에는 무엇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분명히 무엇인가 자극이 있어 의병활동을 시작했을텐데요~ 의병활동 전에 무엇을 했습니까?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 7세 때에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이곳의 아버지가 만든 서당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사서(四書)와 사기(史記) 등을 읽었습니다. 또 틈만 나면 화승총주1을 메고 사냥해 명사수로 이름이 났습니다. 16세가 되던 1894년, 아버지가 감사(監司)의 요청으로 산포군(山砲軍: 수렵자)을 조직해 동학군 진압에 나섰을 때 참가하였습니다. 다음 해에 천주교에 입교해 토마스[多默]라는 세례명을 얻었습니다. 한때는 교회의 총대(總代)를 맡았다가 뒤에 만인계(萬人契: 1,000명 이상이 계원을 모아 돈을 출자한 뒤 추첨이나 입찰로 돈을 융통해주는 모임)의 채표회사(彩票會社: 만인계의 돈을 관리하고 추첨을 하는 회사) 사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이후 교회 신자들과 함께 만인계의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등 수완을 발휘하였습니다.
1904년에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해외 망명을 결심, 산둥[山東]을 거쳐 상해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알고 지내던 프랑스인 신부로부터 교육 등 실력 양성을 통해 독립 사상을 고취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충고를 듣고는 다음 해 귀국하였습니다. 1906년 3월에 진남포 용정동으로 이사해 석탄상회를 경영하였습니다. 정리한 뒤에는 서양식 건물을 지어 삼흥학교(三興學校)를 설립하였습니다. 곧이어 남포(南浦)의 돈의학교(敦義學校)를 인수해 학교 경영에 전념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중근의사는 16세가 되던 1894년, 아버지가 감사(監司)의 요청으로 산포군( 수렵자)을 조직해 동학군 진압에 나섰을 때 참가하였다고 합니다. 다음 해에 천주교에 입교해 토마스[多默]라는 세례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한때는 교회의 총대(總代)를 맡았다가 뒤에 만인계(萬人契: 1,000명 이상이 계원을 모아 돈을 출자한 뒤 추첨이나 입찰로 돈을 융통해주는 모임)의 채표회사(彩票會社: 만인계의 돈을 관리하고 추첨을 하는 회사) 사장으로 선임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교회 신자들과 함께 만인계의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등 수완을 발휘 했다고 하네요.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상해로 망명했다가 국내 실력양성이 중요하다는 선교사의 충고로 귀국해서 학교를 설립하고 연해주 의병 운동을 일으켰으며 각종 모임을 만들어 애국 사상 고취와 군사 훈련을 담당하다가 1909년 3월에 동지 12명이 모여 이토와 이완용 제거를 단지의 피로써 맹세하고 9월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사살,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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