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황해도 해주부에서 태어났습니다. 1895년 천주교학교에 입학하며 신학을 배웠으며, 도마라는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국권 회복 운동 여비 마련을 위해 상해로 건너갔으나 실패하였으며, 부친상 직후 1906년 진남포로 이사하여 석탄상회를 경영하였으나 신통치 않았습니다. 안중근은 석탄회사와 전재산을 정리하여 삼흥하교를 설립하여 교육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했으나 실패하자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에 가담하였습니다. 1908년 전제덕 휘하에서 대한의군참모중장으로 100여명의 부하를 이끌고 경흥군 노면 주둔의 일본군 수비대를 점멸시켰습니다. 그 뒤 본격적인 전과를 올렸으나 얼마 후 일본군의 기습공격으로 패배하였습니다.
그 뒤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의병을 다시 일으키려 했으나 실패하고, 1909년 11인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결성하여 의병으로 재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세서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합니다. 그리고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향년 32세에 여순감옥에서 일제에 의해 사형당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