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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좋은사람이많다
세상에는좋은사람이많다23.05.22

안중근의사의 의거가 일어난곳은 어디인가요?

우리나라 항일투쟁역사에서 안중근의사를 빼면 이야기할 것이 작이진다고 하지요. 안중근의사의 의거는 언제 어디서 일어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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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9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2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해주에서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안중근은 1909년 10월 『대동공보』를 읽고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대장성 대신 코코프체프와 협상을 벌이기 위해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안중근은 동지 우덕순 및 통역 유동하와 10월 22일 하얼빈에 도착한 후 지형을 정찰하고,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렸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안중근은 코코프체프의 안내를 받으며 도열한 의장대를 사열하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권총을 발사하여 그의 가슴과 옆구리와 복부에 명중시켰다.

    그리고 큰 소리로 “코레아 우라(대한국 만세)”를 삼창했다. 안중근의거는 일제의 한국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린 쾌거였으며, 침체되어 있던 항일운동을 다시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중근 의거 (독립전쟁, 그 위대한 여정, 2015. 8. 30.)


  •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 역사상 유명한 순간인 안중근 의거 사건은 1909년 10월26일 오전에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어났습니다.

    당시 조선통담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재무상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회담을 위해 하얼빈역에 도착하였는데요. 수행원 안내를 받아 역에서 내려 이동하는 순간 안중근이 쏜 두발의 총성에 복부를 맞아 저격 당합니다.

    당시 안중근 저격 사건은 일체 침략으로부터 괴롭힘을 겪던 조선인과 함께 중국인들 역시 영웅으로 불리웠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대동공보를 읽고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대장성 대신 코코프체프와 협상을 벌이기 위해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고 안중근은 동지 우덕순 및 통역 유동하와 10월 22일 하얼빈에 도착 후 지형을 정찰하고 하얼빈 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기다립니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안중근은 코코프체프의 안내를 받으며 도열한 의장대를 사열하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권총을 발사해 명중시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1909년 10월 26일 러시아 제국 하얼빈역 (Харбинский вокзал)에서 일본제국의 제4, 6대 내무경, 초대 내각총리대신, 초대 귀족원 의장, 초대 추밀원 의장, 초대 한국통감 을 역임한 이토 히로부미 를 권총 으로 사살한 사건입니다. 당시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를 방문하여 러시아와 회담을 갖는다는 소식을 대동 공보사에서 전해 듣고 거사를 준비 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하였습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6347


  •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였습니다.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외 3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9년 3월 2일, 노브키에프스크 가리(可里)에서 김기룡 · 엄인섭 · 황병길(黃丙吉) 등 12명의 동지가 모여 단지회(斷指會, 일명 단지동맹)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습니다. 안중근 · 엄인섭은 침략의 원흉 이토[伊藤博文]를, 김태훈(金泰勳)은 이완용(李完用)의 암살 제거를 단지(斷指)의 피로써 맹세하고 3년 이내에 성사하지 못하면 자살로 국민에게 속죄하기로 하였습니다. 9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원동보(遠東報)』와 『대동공보(大東共報)』의 기사를 통해 이토가 러시아의 대장대신(大藏大臣) 코코프체프(Kokovsev, V.N.)와 하얼빈에서 회견하기 위해 만주에 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중근은 우덕순(禹德淳, 일명 禹連後) · 조도선(曺道先) · 유동하(劉東夏)와 저격 실행책을 모의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를 태운 특별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하였습니다. 이토는 코코프체프와 약 25분간의 열차 회담을 마치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이토가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고 환영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안중근은 침착하게 걸어가 이토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4발을 쐈습니다. 다시 이토가 아닐 것을 대비해 주위 일본인에게 3발을 쐈습니다. 처음 쏜 4발 가운데 3발은 이토, 1발은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도시히코[川上俊彦]의 오른팔을 맞혔습니다. 이어서 쏜 3발은 비서관 모리타이지로[森泰二郞], 만주철도이사 다나카세이타로[田中淸太郞]를 맞혔습니다. 1발은 플랫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러시아 검찰관의 예비 심문에서 한국의용병 참모중장, 나이 31세로 자신을 밝혔습니다. 거사 동기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토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지 안중근 개인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한반도에서 북으로 멀리 떨어진 하얼빈이라는 중국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사살한 것입니다.

    이때 안중근 의사는 일본 순사에게 잡혀 처형당했죠..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9년10월 26일 러시아 제국 하얼빈(Харбин)의 하얼빈역(Харбинский вокзал)에서, 대한제국 출신의 안중근이 일본 제국의 제4, 6대 내무경, 초대 내각총리대신, 초대 귀족원 의장, 초대 추밀원 의장, 초대 한국통감을 역임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한 사건이다.

    -출처: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