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보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인가요?
진나라의 황제인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외국으로 보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것은 실제 역사적 사실인가요? 아니면 전설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복공원과 서복전시관은 진시황제의 사자인 서불(서복)이 한라산의 불로장생초를 구하러 왔다가 정방폭포를 지나며 '서불과지'라 새겨 놓고 서쪽으로 떠났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라고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마천의 <사기> 권6 진시황본기 기록에 기원전 219년(진히황 28년)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러 가야 차례임을 알고 스스로 황제에게 상소를 올린 사실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제 사람 서불 등을 글을 올려 말하기를, "저 멀리 바다 건너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의 삼신산(三神山)에 신선이 사는데, 동남동녀를 데리고 가서 모셔오고자 합니다." 이에 서불을 보내 동남동녀 수천을 뽑아 바다로 나가 신선을 찾아오게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보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원히 늙지 않고 오래 살고자 불로장생을 꿈꿨던 진시황은 먹으면 늙지 않는다는 '불로초'를 찾기 위해 중국 전역에 신하를 보냈고 신하 중 한 명인 서복은 바다 건너 삼신산으로 가 불로초를 구해오겠다고 나섰다고도 합니다. 중국 고대의 임금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라고 내렸던 명령이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점을 방증하는 기록이 있는데 《신화통신》 등 중국언론들은 과거 발견된 목독 (木牘)을 분석한 결과, 진시황의 불로초 명령에 대한 답신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해당 목독은 총 3만6000여 개로, 2002년 후난성 한 성벽 아래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입니다. 시황제는 말년에 미신에 집착하게 되며,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국력을 낭비, 불로불사에 집착하게 되며 미신에 대한 집착이 절정에 달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마천이 쓴 역사서 «사기» 가운데 <진시황본기>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내가 전에 천하의 쓸모없는 책들을 거두어 모두 불태우게 하고, 학자와 방사들을 아주 많이 모조리 불러 모아 태평을 이루려 했더니 방사들이 단약을 구워 기이한 약을 만들자고 했다. 지금 듣자하니 한중(韓衆, 한종)은 가더니 소식이 없고, 서불 등은 거금을 쓰고도 끝내 약을 구하지 못했다. 간사한 놈들이 서로 이익을 챙기고 고발한다는 말만 날마다 듣고 있다. 노생 등을 내가 존중해서 잘 대했거늘 지금 나를 비방하며 나의 부덕을 무겁게 하고 있다."
이 글은 시황제가 자신을 속이고 도주한 술사 노생, 후생의 일을 듣고 내뱉은 말을 적은 것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으나 글의 단약이 곧 불사약을 말합니다. 서불은 시황제에게 신선이 사는 곳을 찾는다며 사기를 쳤고, 노생은 시황제에게 이러이러해야 불사약을 찾을 수 있다며 사기를 친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 기록을 토대로 봤을 때 진의 시황제가 불사약에 관심을 두고 이를 찾으려 했던 일이 있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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