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시 신료들은 명나라를 도와 원병을 파견 해야 한다는 측과 명을 저무는 해이니 후금를 도와야 한다는 두 개의 파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광해군처럼 중립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도 강홍립 정도가 광해군의 뜻을 이해 한것으로 보입니다. 광해군의 명을 받고 강홍립은 원군을 이끌고 가서는 명을 도와 싸우지 않고 후금에게 항복을 하였습니다. 이런 강홍립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였으며, 현재에는 강홍립에 대해 포로가 된 병사들을 살렸고, 신흥 강호였던 후금과 직접적인 적대 관계를 최대한 늦추었다는 호의적인 연구들도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