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중립외교 당시에 찬성한 관료들도 있었나요?
광해군은 중립외교를 하며 현재의 관점으로 볼 때는 현명했지만 당시의 사대부에겐 옳지 못해서 폐위당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책을 찬성하는 관료들도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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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시 신료들은 명나라를 도와 원병을 파견 해야 한다는 측과 명을 저무는 해이니 후금를 도와야 한다는 두 개의 파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광해군처럼 중립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아마도 강홍립 정도가 광해군의 뜻을 이해 한것으로 보입니다. 광해군의 명을 받고 강홍립은 원군을 이끌고 가서는 명을 도와 싸우지 않고 후금에게 항복을 하였습니다. 이런 강홍립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였으며, 현재에는 강홍립에 대해 포로가 된 병사들을 살렸고, 신흥 강호였던 후금과 직접적인 적대 관계를 최대한 늦추었다는 호의적인 연구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경제·금융전문가 조유성 AFPK입니다.
✅️ 네, 당시 광해군과 연립정권을 이루었다고 보는 세력인 '대북 세력'의 경우 중립외교를 오히려 지지하였으며, 이 대북은 이이첨을 영수로 했는데 인조 반정 이후 사실상 서인 세력에 의해 사라지게 되는 정파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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