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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검은꼬리63
흰검은꼬리6323.06.19

우리나라 고대 부여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어떻게 망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고대 부여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는 어떻게 망했는지 궁금합니다.

왜 망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학계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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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19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漢代 이후 부여는 북방의 유목민과 남방의 성장하는 고구려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도 중국과 부단한 관계를 가지면서 국가로서 성장을 지속해 나갔다. 그러나 부여는 계속해서 서쪽에서 성장했던 鮮卑 慕容氏의 세력과 남방의 고구려의 압력을 받았다. 따라서 加耶와 마찬가지로 국가발달이 순조롭지 못하여 연맹체적 단계에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로 전환하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다.


    부여 왕조의 구체적인 변천상은 잘 알 수 없지만, 역사가 오래 지속된 만큼 주변세력의 영향을 받아 내부적으로 다양한 변화와 발전이 있었으며, 중심지에도 일련의 변동이 있었다. 이는 부여에 대한 표기가 시기와 사료에 따라 北夫餘, 부여, 東夫餘 등으로 나타나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대체로 부여는 지금의 만주 松花江유역을 중심으로 존재하였는데, 거기에서 동부여가 나오고, 그 동부여에서 고구려의 지배층이 된 朱蒙집단(桂婁部 왕실)이 나왔다. 주몽집단은 압록강 일대에 진출하여 卒本夫餘 즉 고구려를 세웠다. 이에 압록강유역에 먼저 와 살고 있던 주민의 일부가 다시 한강유역으로 남하하여 백제 건국의 주도세력이 되었다. 이들도 부여족이었으므로 백제는 그 왕실의 성씨를 扶餘氏라고 했고, 부여의 건국 시조인 東明王을 제사지내는 사당인 東明廟를 설치하였다. 또한 백제는 6세기 중반 자신들이 세운 국가의 이름을 南扶餘라고 하기도 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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