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52년 6월, 남녀 5000~6000명의 병력으로 호남 남부에 들어온 태평군은 거기에서 천지회원이나 광부, 빈농, 유민 등으로 이루어진 다수의 새로운 참가자를 더해서 크게 발전하는 계기를 잡았다. 멸만흥한(滅滿興漢)의 구호나 조세면제의 약속, 부호로부터 빼앗은 재화의 분배, 민중에 대한 엄격한 군규, 죽음을 승천(昇天)으로서 두려워하지 않는 투지, 제왕의 굳은 단결 등에 의해서, 태평군은 민중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서 호남, 호북, 강서, 안정을 거쳐서, 1853년 남경을 접령한 당시에는 수십만의 잘 통제된 대병력으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