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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센때까치29
굳센때까치2923.08.26

광대는 어떻게 선택되고 훈련되었나요?

광대는 어떻게 선택되고 훈련되었나요? 이들은 전문적인 학습과 연습을 거쳐서 자신의 기술을 개발한 것인가요? 그리고 조선시대 광대 문화가 현대 예술이나 엔터테인먼트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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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대(廣大)가 본디 판소리 창자를 뜻한 말은 아니었다. 광대란 말은 원래 가면(假面)을 뜻하던 말이었다. 조선시대 국가기관이었던 사역원(司譯院)에서 만든 중국어 어휘 사전인 『역어유해(譯語類解)』(1690)에서 ‘假面 광대’라 하여 ‘가면(假面)’을 우리말로는 ‘광대’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면과 같은 물건을 광대라고 하는 것은 “나례청의 잡상(雜像), 주지(注之), 광대(廣大) 등의 물품을 우변 나례청은 이미 이전에 쓰던 것으로 수리해 만들었는데”(『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8년 8월 20일), “중국 사신이 왔을 때 사용할 주지(注之) 및 작은 주지 한 개, 평량자 50개, 절요마(折要馬), 광대(廣大) 등에 들어갈 채색”(「나례청등록」, 1626) 등의 기록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전남 낙안 읍성이나 진도 소포리 농악의 잡색들이 쓰는 가면을 역시 광대라고 하는 것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분명 가면을 광대라 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로 가면을 쓰고 연희하는 사람을 광대라 한다.”(『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 ‘전영보’)라고 한 언급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미 가면을 쓰고 연희하는 사람도 광대라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가면 자체를 광대라고 하다가 그 뜻이 다시 확대되어 가면을 쓰고 연희를 하는 사람까지도 광대라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다 1930년대에 당시 연극학자였던 김재철은 ‘광대란 말은 원래 가면을 쓰고 연희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근래에는 줄타기 하는 사람이나 판소리 창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판소리 창자를 광대라고 한다’라고 했다. 이 무렵에는 ‘광대’라면 주로 판소리 창자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가면을 뜻하던 말이 가면을 쓰고 연희를 하는 사람을 넘어, 가면을 쓰지 않는 줄타기꾼에도 쓰이고 심지어 1930년대 무렵에는 왜 판소리 창자를 가리키는 말로 주로 쓰이게 되었을까?


    적어도 고려 1040년(정종 6)에 가면을 광대라고 부른 것은 우리나라 궁궐에 들어온 중국의 나례(儺禮)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나례란 것은 한 해의 마지막 날 나례신들을 앞세워 잡귀잡신들을 몰아내는 것인데, 그 대표적 나례신인 방상시[方相氏]는 그 가면의 크기가 1926년 순종황제 국장 때 만들어진 것의 경우 가로 76㎝, 세로 72㎝로 매우 컸다. 중국의 나례 의식과 함께 들어온 이 큰 가면들을 당시에는 ‘큰 것’이라고 하고, 적기로는 ‘광대(廣大. 넓을 광, 큰 대)’라 하였을 것이다. 가면의 다른 말인 ‘탈’도 역시 이 나례에서 나왔다.


    나례 때 가면을 쓴 나례인들이 탈, 곧 잡귀잡신 계통의 것들을 몰아내기에, 그러한 ‘탈’을 몰아낼 때 사용하는 가면도 역시 탈이라 하게 된 것이다. 종래 가면에 대한 우리나라 고유의 말이 있었겠지만, 고려 때 중국에서 들어온 나례 때의 가면들이 너무 발달되어 있었기에, 이후 이 가면과 관계되는 말로 ‘광대’ 혹은 ‘탈’이란 나례 계통의 말이 쓰이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광대를 쓰는 사람도 점차 ‘광대’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가면을 쓰면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양주별산대), ‘탈을 집에 두면 제사도 못 지낸다’(은율탈춤)라고 하여 실제 조선 후기까지도 일반 평민들은 가면을 쓰기 꺼렸다. 그래서 강릉 관노가면극은 말 그대로 관노(官奴)에 의해, 하회탈놀이도 원래 풍산 류씨 집안의 노비들에 의해, 양주별산대도 주로 천민 신분의 무부(巫夫)들에 의해 놀아졌다. 이른바 천민들이나 가면들을 썼던 것이다. 여기서 ‘광대’란 것이 가면을 쓰고 놀이를 하는 사람을 넘어 그러한 가면을 쓰는 부류의 사람들 곧 천민 계통의 일정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까지 쓰이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신분 제도가 유지되었던 조선시대 말까지도 하나의 신분 집단으로서의 광대 집단은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의 민속예능을 담당해 왔던 집단이었고, 이들이야말로 우리나라 민속예능사의 중심이었다. 이들 광대들에 의해 우리나라의 주요한 민속예능들이 대부분 성립, 발전, 유지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근대 무렵까지도 민속예능을 공식적으로 담당한 하나의 신분 집단으로 광대라는 수십 만 명의 전문적 민속예능 집단의 사람들이 있었던 나라는 사실상 우리나라밖에 없었다 할 것이다.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문학사전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늘날의 광대는 연극, 영화, 서커스 등에서 공연을 위해 화장과 의상을 담당하는 예술가 인데 광대가 되기 위해서는 예술학교나 대학에서 연극, 무용, 음악 등의 전공을 선택하고 광대 전문 학교에서 광대의 기초를 배우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광대는 천민이며 무당 서방인 그 고을의 재인·광대는 원님의 행차의 선두에서 三絃六角을 연주하고, 연회 때에는 여러 가지 놀이와 재주를 연출하였다고 합니다. 이 고을의 재인청이 모여 각 도에 대방을 두고, 관리를 하기도 했는데 여러 소임을 두고 지방의 향연에서부터 서울에서의 나례 등 모든 연예적인 행사에 재인·광대를 참가 시켰다고 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26

    안녕하세요. 송민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선삐에로에도 종류가 많습니다!

    삐에로라는 직업을 배우기 까지는 시간이 조금걸립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장비를 능숙하게 신고 걷게될때까지 연습이 많이 필요합니다 또한 분장까지 마스터를 해야 합니다!

    무조건 돈만보고 일을한다는생각보단 정말즐기면서 해야 보람도 느끼고 자부심도 생기는 직업이라고 생각이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