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송종민 과학전문가입니다.
인간의 피라미드에 비기면 3배나 큰 모래성을 쌓고 사는 흰개미는 개미와 생김새만 닮았을 뿐 분류상으로나 유전적으로나 완전 별개인 곤충이다. 하지만 여왕만 알을 낳고 나머지 암컷 일꾼들은 평생 육아와 가사를 책임지는 번식 분업을 하기는 개미나 벌과 다르지 않다. 거대한 모래성 안에는 누군가는 자식을 낳고 다른 개체들은 그 누군가가 낳은 개체를 공동으로 기르는, 이른바 ‘진사회성’(eusociality) 사회가 존재한다.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우림에서 사는 한 흰개미 종이 외부에서 적이 공격해오면 자폭해 무리를 지킨다는 사실이 보고됐다. 흰개미 종들은 적을 발견하면 배설을 하거나, 배 근육을 수축시켜 배설물을 적에게 쏘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로 발견된 흰개미 종 일꾼은 젊었을 때 집을 돌보고 먹이를 구해오는 일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아래턱이 닳아 없어지고 힘이 빠지면 집 지키는 일만 맡는다. 태어날 때부터 뱃속에 품고 나온 ‘폭탄 배낭’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커진다. 모래성 문을 지키던 흰개미 일꾼은 다른 동물이 접근해 오면 독주머니가 든 배를 스스로 터뜨려 적에게 독물을 뒤집어씌우며 장렬히 전사한다. 이쯤 되면 진사회성의 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초원의 땅굴에서 사는 벌거숭이두더지라는 포유류도 여왕 한 마리만 새끼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타주의적 진사회성이 왜 진화했는지, 진화의 궁극적인 종착점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다만 여왕에게 복종하고 자살폭탄을 터뜨리는 것 모두가 종족의 안정적인 번식을 위한 희생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인간의 이기성이 낳은 타협의 산물인 사회성과는 다르다. 여왕에 대한 복종, 헌신이 진정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