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장군은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 당시 현종의 피난을 권유하여 국왕은 물론 사직을 보존한 공로로 문하평장사와 서경 유수를 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차 침입시 문관이지만 상원수로 임명되어 군사 20만을 이끌고 1019년 귀주대첩로 거란을 격퇴하였습니다. 고려는 문신을 우대하고, 무신을 천대한 시대로, 무관은 3품 이상의 고위 관직에 진급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수많은 장수와 20만대군을 지휘하기 위해 상원수로 임명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