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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12.24

광개토대왕릉비가 왜 임나일본부설의 근거 인가요?

일본극우사학계의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주장이 있는데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광개토대왕릉비가 있다는데 내용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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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은 <일본서기>의 신공황후 기사가 '광개토대왕릉비'에 임나일본부설을 증명하는 결정적 기록이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유명한 신묘년 기사입니다.
    "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以爲臣民"(왜가 신묘년(391년)에 바다를 건너 와서 백제, 임나, 신라를 쳐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

    그런데, 일본의 해석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즉 신묘년 기사의 '도해파(渡海破)'의 주어는 '왜'가 아니라 고구려로 봐야 한다면서, "왜가 신묘년에 왔으므로,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가 왜를 깨뜨리고 백제와 □□ 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하야 한다는 것입니다.(정인보)

    게다가 1972년에는 재일동포 사학자인 이진희가 일명 '석회 도포설'을 주장입니다. 즉 처음 비문을 연구하는 과정에 일본 육군 참모본부가 깊숙이 개입했었다는 점을 근거로 참모본부가 '탁본'을 바꿔치기 하고 심지어 광개토왕 비문에 석회를 발라 글자를 변조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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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왜인들이 신묘년(391년)쯤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x라(아마도 신라) 를

    xx하고 신민으로 삼았다

    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완전 박살나서 해석 불가능한 한자3개 때문에

    왜인들이 신라와 백제를 신민 삼은 걸 수도 있고

    왜인들이 공격하는걸 둘중 하나를 공격해서 다른 쪽이 재점령 한 것일 수도 있고

    고구려가 두 나라를 도와줘서 신민 삼은 걸 수도 있어서

    (고구려 왕릉비에 적힐 내용이면 이쪽이 더 적절하겠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합니다

    설령 일본 주장 대로 왜인들이 백제와 신라를 점령한 것이더라도

    애초에 얼마나 큰 땅을 점령한건지는 나와 있지 않아서 그냥 마을 한두개였을 수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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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개토대왕비의 비문의 글자가 정확치 않아 나타난 현상입니다. "신묘년조 왜이신묘년래도해파백잔⬜⬜신라이위신민" 이며 주요 논점은 도해파의 주체를 누구로 볼 것인가의 문제와 자구가 일부 변조되었는지의 여부입니다. 초기 연구를 주도했던 일본 학계에서는 도해파의 주체를 왜로 보고 임나일보부설의 주요근거로 삼아왔습니다. 그러나 정인보 박시형 등 남북 사학자들은 도해파의 주체를 광개토대왕으로 보고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신모년도 당시에는 왜구가 백제나 신라를 공격할 만한 세력이 아닌 해적들이었기에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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