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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알쌍7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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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방탄조끼를 조선인의 손으로 만들었다?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엑스포가 열려서 '방탄조끼'가 한국관의 메인 전시했다고 하네요.

전시 당시 미국인들이 조선의 방탄조끼에 충격 먹었고 대단했다고 하네요.

사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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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866년 병인양요 직후 우수한 방호 능력을 지니면서도 무게가 가벼운 방탄조끼가 등장했습니다. 최근에야 개발된 줄 알았던 군사 과학기술의 결정체가 100년도 더 된 우리 역사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조선군이 방탄조끼를 개발한 건 병인양요 뒤 서양 총의 우수한 성능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양 총에 위축된 병사들이 제대로 된 전투를 할 수 없을 것으로 봤던 흥선대원군은 방탄조끼 개발을 직접 지시했습니다. ‘면제배갑’이라고 이름 붙여진 조선군의 방탄조끼는 그렇게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면제배갑은 면 헝겊 13겹을 겹쳐 단단히 꿰맨 것이었습니다. 여러겹의 면이 총탄의 운동 에너지를 차례차례 흡수해 병사를 보호하도록 했습니다. 면제배갑은 1871년 미국이 자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침몰을 계기로 일으킨 신미양요 때 본격적으로 성능을 입증하였습니다. 면제배갑을 착용한 당시 조선군은 실제로 미국 군대가 퍼부은 총탄에서 보호 받았습니다. 총탄으로부터의 방호라는 목적이 정확히 달성된 셈이었습니다.

    출처: 한겨레 미래&과학

  •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면제배갑(綿製背甲) : 서양 군의 총탄을 막기 위해서 면을 수십 겹으로 덧대서 만든 갑주인 면제배갑(綿製背甲)은 세계최초로 발명된 방탄조끼로, 흥선대원군의 명령에 따라 김기두와 강윤에 의해 1860년대 후기에 발명되었다. 또한,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군과 조선군의 전투에서 사용되었다.

    금속제 갑옷을 제외하고 섬유로 만든 방탄복을 말하면 조선 말기때 만든 면제 배갑이 최초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면제배갑(綿製背甲) 또는 면제갑옷(綿製甲胄)은 무명을 여러 겹 겹쳐 만든 조선 말기의 갑옷으로 세계 최초로 발명된 방탄조끼라고 주장되고 있으나, 직물을 여러 겹 겹쳐 만드는 방식의 방탄복은 15세기 후반 유럽에서 이미 등장한 것이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선대원군이 서양의 무기에 놀라게 되었고, 흥선대원군은 신하들에게 총탄을 방어할수있는 갑옷 개방을 명합니다.

    이에 신하들은 갑옷개발을 시작하고 이에 최초의 방탄조끼인 면제갑옷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방탄헬멧과 마찬가지로 과거 냉병기를 사용하던 시절의 갑주 등이 유래라고 볼 수 있지만 열병기를 보호하는 용도를 기준으로 한다면 용기병들이 쓰던 흉갑, 그리고 강한 섬유강도 때문에 섬유가 형상을 유지한 채로 총알을 감싸서 상처로부터 총탄의 적출이 쉽게 해주던 실크 셔츠 즉, 천 갑옷에서 이어져왔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러한 갑옷 종류는 전세계에 걸쳐 볼수 있는데 조선시대를 예로 들자면 당시 한지를 겹처서 화살을 막게 설계한 지갑(紙甲), 면포를 여러장 겹쳐 만든 면제배갑(이불을 몸에 두르고 다니는 것을 상상해보자)등이 총알에 대응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880년대에 미국의 Dr. George Emery Goodfellow라는 사람이 실크를 소재로 방탄복을 만들었다. 18겹에서 30겹으로 만들어진 이 조끼는 화살을 충분히 막을 수 있어서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미국으로 파견된 Kazimierz Żegleń이 폴란드인 발명가 Jan Szczepanik와 함께 최초의 근대적인 방탄 조끼를 만들어냈다. 제글란이 만든 방탄 조끼는 1/8 인치(3.175mm) 두께였으며 두꺼운 것은 1 인치 두께로 1 평방피트마다 2 파운드의 무게였다고 한다. 당시의 흑색화약을 쓰던 권총이나 소총 탄환은 막아낼 정도였다.


    일단 1차 대전 전부터 있던 실크 방탄복은 총탄을 막을 수 있으나, 그 유연함 때문에 충격을 받으면서 깊게 들어가므로 뼈가 부러진다. 참고로 당대 소총으로 쐈을 때 덤덤탄(HP)은 400야드에서 막고 철갑탄은 800야드 거리에서 막았다나. 철판을 겹치면 250야드에서 철갑탄을 막기도 했단다. 근데 가격이 1914년 당시 800 US 달러. 2008년의 가치로 환산하면 1만 7천 US 달러 정도 된다. 한국 돈으로 거진 2천만원.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이 방탄 조끼를 입고 있었으나 목에 맞았기 때문에 사망. 그리고 결국에는 어느 전쟁의 불씨가 되고 말아버리는데 1901년에는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가 암살당할 뻔 했을 때는 Jan Szczepanik의 방탄복이 효과를 발휘했다.


    결국 군대에 일반적으로 보급할 순 없었고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위에서 설명한 물건, 그 중에서도 과거 갑옷을 간략화 시킨 흉갑이 방탄복의 역할을 해오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러서는 착용감 등을 개선하였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바로 흥선 대원군의 지시로 만들었다는 변제 배갑입니다. 면제배갑은 면 헝겊 13겹을 겹쳐 단단히 꿰맨 것이었다. 여러겹의 면이 총탄의 운동 에너지를 차례차례 흡수해 병사를 보호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면제 배갑은 1871년 미국이 자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침몰을 계기로 일으킨 신미양요 때 본격적으로 성능을 입증하지만 그 이후 성능이 개선된 총이 나오면서 한계에 부딪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