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의 장남인 의경세자와 세자빈 한씨의 적차남으로 태어났는데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는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고 왕위 계승권은 작은아버지에게 넘어갔으나 작은아버지 예종마저도 갑작스럽게 승하하였다. 왕위 계승 서열 3위임에도 불구하고 사촌동생 제안대군과 친형 월산대군을 제치고 장인 한명회라는 어마어마한 지원과 당시 왕실의 최고어른이신 대왕대비이자 할머니 정희왕후의 지목을 받아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면서 임금으로 즉위했다. 왕이 된 시기도 문화적 유산들이 꽃이 피는 때였고 나라를 다스리는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으며 별다른 외침없이 태평성대가 지속되었다. 이토록 재위 내내 수월하게 왕 노릇을 했던 성종은 대간들의 잔소리에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지만 좋아하는 여색과 술을 마음껏 즐기면서 살다가 아내인 폐비 윤씨를 사사했고 39세라는 젊은 나이에 승하했다. 죽고 나서 묘호를 성종(成宗)으로 불리고 조선시대 사대부들 사이에서 세종과 더불어 성군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