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세종과 더불어 성군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종은 이처럼 새로운 정치체제를 중국의 제도를 수용해 마련했는데, 우리나라 역사상 중국식 제도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여 시행한 것은 이때가 처음으로서 그 역사적 의의는 자못 크다. 그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치적 · 사회적 여건의 성숙과 발전이 그러한 선진제도의 수용을 필요로 하게 된 것임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고려 건국 이래 엄청나게 늘어난 새로운 정치세력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정치체제로서는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종대의 정치적 지배세력의 성격은 그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 즉, 성종대 전반기에는 신라 6두품(頭品)계통을 중심으로 한 유학자 세력이 정치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가, 후반기에는 이들 대신 개국공신 혹은 호족계열 세력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나 신라시대에 비해 권력구조의 핵에 참여할 수 있는 신분층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