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는 한국과 일본의 중계자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했습니다. 양국의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것입니다. 조선 초기 대마도는 인구가 적은데다가 농사에 적합한 토지도 없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대마도의 주민들은 교역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갖춰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 내륙에서 전란과 교역 여건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과의 관계를 중요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막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던 해상 세력과 전쟁에서 패전한 장수와 병력들이 대마도 일대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14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인근 지역을 침탈하는 이른바 왜구 활동이 본격화하였습니다.
고려 말 1389년(창왕 1)부터 1419년(세종 1)까지 3차례에 걸쳐 대마도 정벌을 단행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하지만 정벌 이후에도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의 외교 관계에서 중계자 역할을 수행하며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