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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6.21

1898년 미국 스페인 전쟁은 어떤 배경과 원인으로 발발한 것입니까

1898년 미국과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쟁을 치루는데요 아무래도 식민지 쟁탈전으로 보입니다 전쟁의 발발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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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2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쿠바는 16세기 이사벨 1세 당시 스페인이 쿠바를 정복한 이래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배에 가장 중요한 전략적 거점 지역이었습니다.

    스페인의 국력이 쇠퇴하고, 나폴레옹 전쟁과 뒤이은 내전으로 스페인이 식민지 관리를 못하게 된 사이 아메리카 대륙의 스페인 식민지들은 일제히 독립을 선언하고 스페인 세력을 대륙에서 축출하였습니다.

    때마침 미국은 독립 이후 국가적 확장이 시작되면서 일찌감치 쿠바 섬을 노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쿠바를 두고 두 나라가 대립하게 된 것이 배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쿠바 필립핀 푸레르토리코 괌 사모아 등이 전부 스페인 해외영토입니다

    미국스페인전쟁으로 스페인은 패전하여 해외영토를전부 미국에 넘겨주게된것입니다



    미국-스페인 전쟁

    1898년 4월부터 8월까지 쿠바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스페인 간에 쿠바와 필리핀에서 벌어진 전쟁

    이 전쟁은 쿠바의 독립 운동이 스페인에 의해서 거부되자 이를 해결할 것을 미국이 요구하면서 시작


    미국 내의 강력한 확장주의적 정서가 미국 정부로 하여금 필리핀, 푸에르토 리코, 그리고 을 포함한 스페인의 잔존 해외 영토를 병합하도록 부추겼고


    아바나에서 일어난 혁명은 미국이 전함 메인 호를 보내 그들의 높은 국가적 관심을 보이도록 자극하였다. 메인 호의 폭발로 미국인들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스페인이 자신의 식민지를 억압하고 있다는 황색 언론은 미국의 여론을 움직였다.


    전쟁은 필리핀과 쿠바에서 미국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1898년 12월 10일, 파리 조약은 쿠바와 필리핀, 푸에르토 리코, 괌의 지배권을 미국에게 넘겨주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가들은 1890년대에 미국의 외교 노선이 전통적인 고립주의에서 팽창주의로 전환했다고 말한다. 당시 열강이 경쟁적으로 해외팽창 정책을 추구하던 시대적 분위기도 있었고,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원료와 상품 시장을 해외에서 찾아야만 했던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해외팽창 정책은 좀 더 간단하게 설명될 수도 있다. 곧 서부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엄청난 국가 발전의 에너지가 신대륙 '최후의 변방'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바다 건너로 분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해외팽창주의는 1890년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미 1823년에 먼로 대통령은 이른바 먼로 독트린을 통해 중남미가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음을 내외에 천명한 바 있다. 당시에는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이것이 현실이 되는 데는 몇 십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남북간 내전으로 미국이 정신이 없는 틈을 노려 멕시코를 보호령으로 만들었던 프랑스는 종전 후 먼로주의를 들먹이며 철수를 요구하는 미국의 위세에 눌려 1867년 서둘러 멕시코를 떠났다. 그해 미국은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러시아로부터 사들였다. 또한 미국은 이미 1840년대부터 하와이에 대한 배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1880년에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아예 자국 영토로 합병해 버리고 말았다. 여기까지는 사실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미국이 중남미로의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최초의 무대는 쿠바였다. 1890년 당시 쿠바는 스페인의 속령이었는데, 많은 미국인과 대부분의 쿠바인들에게 이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16, 17세기에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한 국가들은 스페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축출되었거나 철수한 상태였다. 물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몇몇 작은 섬을 점령하고 있었으나 미국인들은 그러한 작은 섬의 점령은 실질적으로 별로 의미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쿠바인들은 스페인보다는 미국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쿠바에 대한 미국의 자본 투자는 1898년 이미 5천만 달러를 넘었으며, 쿠바는 적어도 매년 1억 달러 이상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이미 쿠바는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은 미국이 아니라 스페인으로부터 거의 모든 물건들을 수입하도록 쿠바에 강요했다. 대서양을 건너가, 그것도 비싸게 물건을 사와야만 했던 쿠바 사람들은 당연히 불만이었고, 이것은 미국 상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미국인들과 쿠바인들이 강력하게 결속하게 된 것은 필연이었다. 미국은 쿠바의 반정부 단체가 미국 본토에 혁명 본부를 설치하도록 허락했으며 이들에게 국제법상 전쟁 단체의 지위를 부여했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1895년에 쿠바에 무장 혁명이 발생했다. 혁명의 발단은 미국이 쿠바와의 무역 불균형에 불만을 품고, 쿠바산 설탕에 대한 무관세 정책을 철폐한 데서 비롯되었다. 미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힌 농장주들은 시장에서의 가격 보전을 위해 농장 노동자들의 임금을 형편없이 삭감했고 이를 견디지 못한 농민들은 결국 혁명에서 살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런데 혁명 진압 과정에서 스페인 군대가 저지른 잔혹 행위 때문에 문제가 더 복잡하게 얽히고 말았다. 스페인 군대는 혁명 가담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가두고 적법한 절차 없이 처형했다. 한 강제 수용소에서는 수백 명의 수감자들이 무차별 학살되는 만행이 저질러지기도 했다. 미국의 극우 신문들은 연일 스페인의 만행을 대대적으로 규탄하고 정부에 스페인과의 전쟁을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의 매킨리 대통령은 전쟁 대신 정상적인 외교 채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때마침 스페인에서는 자유주의자 사가스타가 정권을 잡고 쿠바에서 잔학 행위를 저지른 웨일리 장군을 본국으로 소환했다. 많은 사람들은 쿠바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낙관했다.


    그런데 전혀 뜻하지 않게, 미국인 보호를 위해 쿠바 근해에 파견되었던 미 해군 순양함 메인 호가 1898년 2월 원인모를 사고로 폭발하여 승무원 260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미국 내 여론은 스페인을 의심하는 쪽으로 흘러갔고 정부 내에서도 개전론자들이 목소리를 한껏 높이기 시작했다. <뉴욕저널> 같은 극우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가, 기업가, 그리고 시어도어 루스벨트 같은 저명한 정치가들도 주전론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평화주의자 매킨리도 들끓는 여론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강경론으로 돌아섰다.

    1898년 4월20일 의회는 마침내 스페인에 전쟁을 선포했다. 동시에 전쟁에서 승리해도 미국은 쿠바를 병합하지 않겠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4일 후 스페인도 선전포고로 맞서 양국 간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쿠바가 아닌 스페인령 필리핀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진작부터 필리핀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미국 정부는 스페인과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자 중국 연안에 파견되어 있던 미 해군 함대에 개전 즉시 필리핀을 공격할 것을 명령해 놓은 상태였다. 의회의 대 스페인 선전포고가 있자마자 듀이 제독이 이끄는 미 함대는 필리핀으로 항진, 5월 1일 마닐라 만에서 스페인 함대를 격파하고 필리핀을 점령했다. 미군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은 그야말로 완벽한 승리였다.


    한편 쿠바에서는 파스쿠알 세베라 제독이 이끄는 스페인 함대가 해안에 강력한 저지선을 치고 미 함대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공격이 여의치 않자 미 해군은 쿠바 해안을 봉쇄하여 스페인 함대를 고립시킨 후 돌격대를 침투시키는 작전으로 나왔다. 해군성 차관직을 사임하고 전쟁에 자원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령이 이끄는 특공대가 산티아고에 상륙 방어군의 후방을 기습했다. 함대를 방어하던 외곽 부대가 무너지면서 전투는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세베라 제독의 맹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막강 미 해군은 단 몇 명의 전사자를 기록한 채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미국의 군사력은 이미 스페인 정도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어느 비평가의 말대로 미국의 입장에서 이는 하나의 "소풍 같은 전쟁"이었다.


    오히려 군인들이 맞서 싸워야 했던 가장 큰 적은 스페인이 아니라 말라리아와 황열병이었다. 이 전쟁에서 미군 전사자는 5,600여 명이었는데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450여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병사(病死)였다. 따라서 전쟁의 진정한 영웅은 루스벨트와 그의 특공대가 아니라 말라리아와 황열병이 모기에 의해 전염된다는 것을 발견한 윌터 리드 박사였다. 그의 지시에 따라 모기 서식지인 야영지 주변 습지들을 메워 모기의 번식을 막았고 이로써 수많은 인명을 질병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었다.


    1898년 파리에서 스페인에 매우 가혹한 조건의 강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스페인은 쿠바를 포기하고 푸에르토리코와 괌도 미국에 내주었다. 또한 필리핀을 겨우 2000만 달러에 미국에게 넘겨주었다. 이것은 아메리카를 처음 발견한 스페인 제국의 종말과 신흥 강대국 미국의 등장을 전 세계에 알린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출처 : 미국사 다이제스트 100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국 스페인 전쟁은 쿠바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스페인 간에 쿠바와 필리핀에서 벌어진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쿠바의 독립 운동이 스페인에 의해서 거부되자 이를 해결할 것을 미국이 요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