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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밝은 별빛  나그네65
사막의 밝은 별빛 나그네6523.10.28

12.12사태는 어떤 사건인가요?

근현대사에 길이길이 대박사건으로 남을 12.12사태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어떤 사건을 말하고 사태의 의미를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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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가 일으킨 군사 반란입니다.

    1979년 10.26사건이 일어나 박정희가 사망 후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간에 사건 수사와 군 인사 문제를 놓고 갈등이 있었고,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정승화가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았다 주장, 10.26사건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임을 내세워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기로 합니다.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후 12월 12일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장기오 등과 사전 접촉을 했고

    12월 초 전두환은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게 정승화 연행을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하였고 이에 따라 12일 저녁 허삼수, 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해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해 제압 후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합니다.

    정승화의 연행에도 저항할지도 모르는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는 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에게 유인되어 연희동 요정의 연회에 초대, 연회도중 정승화의 연행 사실이 전해지자 정병주, 장태완 등의 육군 장성들이 대응 태세를 갖추려 하나 이미 전두환이 박희도와 장기오에게 지시해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지휘부를 무력화시킨 후였습니다.

    정승화의 연행소식이 알려지자 정병주, 장태완은 수도권 인근의 병력을 동원해 신군부의 군사반란에 대응하려 하나 신군부는 전방을 지키던 노태우릐 9사단을 끌어들이며 대처, 결국 신순부는 정병주와 장태완을 체포하는데 성공하며 반란 진압군은 무력화됩니다.

    일련의 사태 진전은 당시 대통령 최규하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고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해 신군부는 최규하에게 압력을 가해 총장연행 재가를 요청하나 국방장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며 거절, 이에 신군부는 국방장관 노재현을 체포해 그를 통해 대통령이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하게 설득, 결국 최규하는 13일 새벽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합니다.

    군사반란이 성공하자 신군부는 빠르게 정권을 장악, 전두환은 대장, 중앙정보부장을 거쳐 대통령에 이르렀고 노태우 역시 대장, 내무부 장관을 거쳐 대통령을 지내게 됩니다.

    12.12군사반란의 성공으로 신군부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언론을 통제해 민주헌정을 중지시키고 군정으로 회귀하려했고 이에 많은 국민과 정치인이 저항운동을 했고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령이 전국적으로 확대, 이는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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