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29

고려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었나요?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고려시대즈음해서 원나라가 엄청나게 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려는 나라의 이름을 잃지 않고, 어떻게 넘겼는데요.

그 당시 고려의 정확한 상태는 어떻게 될까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귀중한대벌래33
    귀중한대벌래3323.08.30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몽골족은 수백 년간 통일된 국가가 없이 부족별로 다툼을 일삼거나 주변국인 중화제국이나 거란, 여진 등에 복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칭기즈칸의 등장으로 통일된 국가가 성립된 후 팽창을 거듭하여 북중국 및 만주를 자신들의 세력권 안에 두면서 좋든 싫든 두 나라는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몽골에 쫓긴 거란 유민들이 고려를 침공(거란 유민들의 고려 침공)하면서 두 나라는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몽골은 거란 격퇴의 공을 구실 삼아 형제 관계를 요구하고 해마다 막대한 공물을 바칠 것을 요구하였고 몽골의 힘을 잘 아는 고려는 이에 응하여 일단은 평화적인 관계가 성립되었습니다.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당시 몽골은 세계를 제패할 만한 힘을 가진 강대국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하거나 주종관계를 맺으면 맺었지 부자 관계나 형제 관계를 맺은 적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고려와 형제 관계를 맺은 건 대단히 이례적이었습니다.

    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고려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았었습니다. 1231년부터 1257년까지 26년 동안 몽골의 침략을 받던 고려는 결국 몽골과의 강화를 통해 몽골의 종주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을 받으며 국력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고려는 몽골의 종주권을 인정하면서, 원의 황제에게 공물을 바치고, 원의 군대를 주둔시키며, 원의 요구에 따라 군대를 파견해야 했습니다. 또한, 고려의 왕은 원의 황제에게 충성한다는 뜻으로 왕의 이름을 '충(忠)'으로 시작해야 했고, 몽골의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여야 했습니다.

    원나라의 간섭으로 인해 고려는 국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문화와 전통도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고려의 백성들은 원의 수탈과 압정에 시달리며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고려의 멸망을 앞당기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참고 하셔서 도움되셨다면 추천 좋아요 부탁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나라가 고려를 통치 한 방식은 다른 나라와는 조금 달았습니다. 원나라는 제국에 복속된 여러 지역과 민족을 대부분 직접 통치했지만 고려에는 간접 통치 방식을 적용했는데 쌍성 총관부와 같은 감독관을 파견해 내정 간섭하되, 지배층과 그 지배 체제는 그대로 인정해 주어 고려 왕조가 존속 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대신 고려에 공주를 시집보내 부마국으로 삼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는 몽골에 항복함으로 몽골의 속국이 됩니다.

    몽골과 고려는 조공책봉관계에 대해

    서로 다른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몽골이 고려에 형제관계를 요구했을때

    고려는 전통적인 조공책봉질서를 떠올렸고,

    몽골은 고려의 복속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양국의 갈등을 야기했고

    결국 저고여 피살사건으로 전쟁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40여 년에 걸친 항전은

    고려가 몽골이 제시한 조건을 수락함으로써

    사실상 속국이 되는 것으로 종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몽골은 고려의 왕위계승에 개입하고,

    정치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며,

    다루가치를 파견해 정치에 간섭하였습니다.

    심지어 몽골에 반대하는 국왕은 본국으로

    강제 압송하거나 교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출처:네이버

    참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