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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내일도모레도
오늘도내일도모레도24.02.03

정종은 왜 왕의 격에 맞는 대우를 받지못했나요?

강제로 폐위된 연산군이나 광해군같은 왕이 아니면서도 정종은 어째서 죽고나서도 다른 왕들처럼 온전한 대우를 받지못하고 공정왕이라고 불리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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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종은 적장자를 남기지 못하였고 형제에게 왕위를 넘겨주었기 때문에 처음에 공정왕으로 추존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종은 조선 2대왕으로 재임 2년 후 보위를 이방원에게 양위하였습니다.

    사망후에도 묘호 없이 공정대왕으로 불리다가 1681년 숙종 7년 종종이라는 묘호를 받았습니다.

    숙종이 정종의 묘호를 정할 때에도 공정왕이 왜 묘호를 받지 못했는지 실록을 뒤져 찾아 보았지만 알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묘호를 안줄 이유 또한 찾을 수 없었기에 묘호를 정종이라 하였습니다.

    공정왕이 왜 묘호를 받지 못했는지 추측할 뿐이지 그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수는 없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2대 임금인 정종은 사망한 후 묘호도 없이 공정대왕으로 불리다가 1681년(숙종 7년)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았습니다. 세종이 정종 사후에 태종이라는 묘호를 올리지 않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인 이방원에게 태종이라는 묘호를 주기 의한 것이었으며 둘째는 태조와 태종의 부자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태종이 정종의 아들이 되는 바람에 예법으로도 큰 혼선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곧 정종이 죽었을 때 어떤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 문제가 된 것입니다. 세종은 당연히 할아버지가 아닌 큰아버지에 대한 상복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묘호를 올리지 않음으로써 의지를 천명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종은 태조, 태종과 달리 승하 후 바로 묘호를 받지 못하였는데 이는 정통 임금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또 국왕이 국왕 대우를 받지 못하면 그 일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손들까지 대대로 국왕의 그것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었으므로 정종의 자손들은 국왕의 자손이 아니라 대군의 자손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여러 왕실 관련 예제나 정치적 관계, 역사적 정통성 등과 관련되어 복합적으로 영향이 따르는 중요한 문제였고 따라서 정종의 묘호 논의는 단순히 왕의 이름을 받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묘호를 받기 전 정종 즉 공정대왕에 대한 묘호 논의는 예종 대에 처음 나왔다고 하는데 예종이 공정대왕에게 안종(安宗) 혹은 희종(熙宗)이란 묘호를 올렸으나 시행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록에도 아무 이유 없이 묘호를 받지 못한 공정대왕에게 묘호를 올리는 것이 어떨지에 대해 예종이 문득 승정원 승지들에게 의견을 묻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다음날에는 대신들을 불러 모아 똑같이 물었는데 승지들이나 대신들 모두 선대왕들이 묘호를 올리지 않은 데에는 뜻이 있었을 것이라며 은근히 반대의 입장을 나타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