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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16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왕이었나요.?

프랑스사람들 입장에서 나폴레옹을 왕으로 인식하는 걸까요 야니면 이순신장군처럼 그냥 위대한 장군으로 인식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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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황제였습니다.

    요약 프랑스의 군인 ·제1통령·황제. 프랑스혁명의 사회적 격동기 후 제1제정을 건설했습니다. 제1통령으로 국정을 정비하고 법전을 편찬하는 등 개혁정치를 실시했으며 유럽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며 세력을 키워나갔으나 러시아원정 실패로 엘바섬에, 워털루전투 패배로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되었다고 합니다.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7.16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프랑스에서는 국가의 영웅이라는 찬사와 나라를 전쟁으로 이끈 전쟁관이라는 비난, 두 시각이 공존합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폴레옹은 1815년 워털루 전투 패배 후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되기 전까지 15년간 유럽을 호령하며 정치,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평생 86번의 전쟁을 치르며 프랑스를 본토의 3배에 이르는 땅을 지배하는 유럽 군사 강국으로 키워냈다. 법전을 펴내 현대 프랑스의 법률적 토대도 만들었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고등 교육제도와 금융시스템 역시 그의 업적이다. 때문에 우파 진영에서는 그를 중앙집권적 국가의 토대를 마련한 국부(國父)로 추앙한다.

    반면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이 치른 전쟁으로 600만명의 프랑스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한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폐지된 노예제를 8년만에 부활시킨 것도 나폴레옹이었다. 성(性)차별도 노골적이었다. 그가 만든 민법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점을 들어 그의 탄생과 죽음을 국가가 기념할 이유가 없다는 게 좌파 진영의 주장이다.

    나폴레옹을 향한 조심스러운 평가는 지금도 사회 곳곳에 투영돼 있다. 광장ㆍ거리 이름에 명사 이름을 붙이는 데 거리낌 없는 파리에서도 ‘나폴레옹대로’나 ‘나폴레옹궁’은 없다. 카르티에라탱 지역에 넓지 않은 ‘보나파르트 거리’만 있을 정도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나폴레옹을 두고) 프랑스인들은 양가적 감정을 지녔다”고 해석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은 아니지만 왕같은 프랑스인의 황제는 다스리는 대상을 프랑스라는 국가가 아닌 프랑스인이라는 국민임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왕정의 군주였던 프랑스 국왕 의 칭호는 왕이 프랑스라는 국가를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를 시사하는데 반면 프랑스인의 황제는 명목상 입헌군주제를 지향했다고 합니다. 이는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봉건제도가 폐기되고 새로운 국민 국가 탄생했으며 황제는 그것을 계승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1809년 1월 1일부터는 아예 공화국 국호를 버리고 "프랑스 제국"을 국호로 삼고 프랑스인의 황제직은 나폴레옹의 군주 즉위가 구식 군주제인 왕정의 복고가 아니라, 제정이라는 새로운 정치체제의 도입임을 의미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