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나폴레옹은 1815년 워털루 전투 패배 후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되기 전까지 15년간 유럽을 호령하며 정치,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평생 86번의 전쟁을 치르며 프랑스를 본토의 3배에 이르는 땅을 지배하는 유럽 군사 강국으로 키워냈다. 법전을 펴내 현대 프랑스의 법률적 토대도 만들었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고등 교육제도와 금융시스템 역시 그의 업적이다. 때문에 우파 진영에서는 그를 중앙집권적 국가의 토대를 마련한 국부(國父)로 추앙한다.
반면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이 치른 전쟁으로 600만명의 프랑스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한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폐지된 노예제를 8년만에 부활시킨 것도 나폴레옹이었다. 성(性)차별도 노골적이었다. 그가 만든 민법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런 점을 들어 그의 탄생과 죽음을 국가가 기념할 이유가 없다는 게 좌파 진영의 주장이다.
나폴레옹을 향한 조심스러운 평가는 지금도 사회 곳곳에 투영돼 있다. 광장ㆍ거리 이름에 명사 이름을 붙이는 데 거리낌 없는 파리에서도 ‘나폴레옹대로’나 ‘나폴레옹궁’은 없다. 카르티에라탱 지역에 넓지 않은 ‘보나파르트 거리’만 있을 정도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나폴레옹을 두고) 프랑스인들은 양가적 감정을 지녔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