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는 영조가 아껴서 어렸을 때부터 세자교육을 받았고 1739년(영조 15) 5살에 영조 대신 대리청정을 하였고 1742년 8살에 종묘에 참석하는 의식에 세자를 참여시켰는데 세자가 법도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모두 우러러 보았습니다. 1747년 궁안에 천연두가 발생하여 경덕궁으로 피신하여 문안을 드리지 못한 일이나 공식적인 만남이 있을 때만 만나고 만나기를 주선하는 사람이 있을 때만 만날 정도로 영조와 사도세자 간에는 친밀함이 적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세자교육을 강압적으로 받아왔고 영조가 직접 친문하는 지리에서 압박감을 느낀 세자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여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었고 이것이 궁녀를 겁탈하고 궁인들은 살해하는 만행으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동궁을 사칭하면서 사가의 여인들까지 겁탈하는 만행들이 발생하기도 하자 왕실의 위기는 고조되었습니다. 1757년 1758년 사도세자의 병이 깊어지면서 발작할 때는 궁비와 횐시를 죽이고 괜찮아지면 후회하곤 했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폐하려 했으나 폐하지 못했는데 영빈까지 세자의 일을 고하자 결국 폐서자 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폐서인이 되어 뒤주에 갇혀있던 세자는 5월 21일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