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조는 즉위한 다음 날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왕조의 교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그다음 날 다시 왕조의 교체 사실을 승인해달라는 내용으로 사신을 따로 보냈다. 당시엔 조선이 정식 국호(國號) 로 정해지기 전이었고, 태조의 직위도 권지고려국사(權知高麗國事: 고려의 국사를 맡아보는 사람) 로 되어 있었다. 외교 문서상의 표현으로만 보면 아직 태조는 새 왕조의 시조가 아닌 고려의 유신이었다.
사신을 접한 명나라에서는 고려의 일은 고려에서 알아서 하라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국호를 새로 제정하면 즉시 알리라고 했다. 공문을 통해 이 사실을 전해들은 태조는 그날 바로 문무백관을 불러 국호 개정에 관해 의논하게 했다. 추천된 국호는 ‘조선(朝鮮) ’과 ‘화령(和寧) ’이었다. 조선이라는 국호는 유래가 오래되었다는 점에서, 화령은 태조의 출생지(후에 영흥으로 개칭) 라는 점에서 각각 추천되었다. 태조는 두 개의 국호 후보를 명나라에 알렸다.
명나라에서는 조선을 새 왕조의 국호로 하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공문에는 “동이(東夷) 의 국호에 다만 조선의 칭호가 아름답고, 또 그것이 전래한 지가 오래되었으니, 그 명칭을 근본으로 해 본받을 것이며, 하늘을 본받아 백성을 다스려서 후사(後嗣) 를 영구히 번성하게 하라”고 적혀 있었다. 이로써 조선이라는 국호가 확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의 건국 이념과 국호, 도읍 (조선왕조실록1, 2015. 7. 15., 이성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