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흔했던 인력거는 어떻게 유입되어 흔해진건가요?
구한말 흔히 보이는 운송수단이 인력거인데요
그당시 인력거는 어떻게 최초 유입되어 온것이며 이후 대중화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민국의 인력거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의 경우, 1882년 경에 일본을 다녀온 박영효가 한성부판윤으로 재직하면서 서둘러 보급하였다고 합니다.
벼슬아치들의 출·퇴근에 차라리 교자 대신 인력거를 권장하였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는 1882년 경, 일본에 다녀온 박영효가 한성부판윤으로 재직하면서 인력거를 보급했다고 전해집니다. 초기에는 관용 교통수단으로 활용되었으나, 1890년대 중반부터는 상업적으로 확대되어 서울 시내와 서울-인천 간을 운행했다고 합니다. 1911년 말 현재 전국의 인력거는 1,217대(당시 자동차는 2대, 객마차는 110대였다.)였으나 1923년에는 4,647대로 늘어났으며, 서울에서는 약 37%인 1,816대가 운행되었는데 인력거를 이용할 사람은 오늘날의 콜택시처럼 인력거조합에 전화를 걸어서 불렀으며, 부유층에서는 자가용을 따로 마련하였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련거는 사람의 힘으로 끄는 수레를 말합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주요 교통수단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상업화된 인력거가 등장한 것은 일본이었습니다. 마차라는 수단이 있는 서양에서는 보편화되지 못했으나 한국 일본 중국에서는 빠르게 보편화되었습니다. 급속한 도시화는 이루어졌으나 적절한 교통수단이나 도로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등장했다는 점에서 근대화의 산물입니다. 일본에서는 1900년대에 노면전차가 개통되면서 점차적으로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1920년대 택시가 운행되기 시작하며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택시가 비싼 관계로 인력거가 6.25전쟁 시기까지는 대중적인 교통수단이었으나 전후기에 버스가 널리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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