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기생의 문화와 예술 활동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조선시대 기생의 문화와 예술 활동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기생들은 어떤 종류의 예술 활동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거나 참여했었나요?
예를 들어, 가야금 연주나 춤, 작문 등 특정한 예술 분야에서 활약이 있었는지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생(妓生)은 관기, 민기, 약방기생(원래는 의녀), 상방기생 등 예기의 총칭입니다. 기녀라고도 한다. 일패, 이패, 삼패 기생을 모두 통틀을 때는 '덥추'라고도 불렸습니다. 영어로 번역하자면 courtesan에 대응합니다. 단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코르티잔은 귀족, 왕족들을 상대하거나 후원을 받는 대가로 성과 유흥(춤, 교양)을 제공하는 고급 매춘부이자 이들의 정부(情婦)에 속했기에 공식적으로 매춘부가 아닌 기생하고는 대응되지 않았습니다.
기생의 기본적인 신조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직업 윤리강령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매창불매음(賣唱不賣淫). 즉, '노래를 팔지언정 몸을 팔지는 말라'였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조선은 매매춘을 불법 취급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자리를 잡는 기생들이 매춘을 할 수가 없었다. 기생은 기본적으로 매춘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춤, 노래, 기악, 학문, 그림, 글, 용모, 화술 등 모든것에 능통한 종합 예술인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외모보다 빠른 눈치와 화술이 더 중요했다고 한다. 불려간 연회에서 단번에 주최자를 가려내고 참석자들의 관계를 추측해야 했으니 당연합니다. 천민으로 분류된 것은 매음을 하는 창기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생에게도 종류가 있어 1패(牌), 2패, 3패의 등급이 있습니다
1패:
궁중에서 여악(女樂)으로 어전에 나아가 가무(歌舞)를 하는 일급기생
2패:
관가나 재상집에 출입하는 급이 낮은 기생으로서 은군자(隱君子) 또는 은근짜라고 하며 내놓고 몸을
팔지는 않지만 은밀히 매음도 하는 즉 겉으로는 기생의 품위를 유지하면서(기생은 이론적으로는술좌석 또는 연희의 흥을 돋우는 연예인이므로) 숨어서 매음하는 류의 기생으로서 대개 이들이 관리의 첩이 되거나 합니다.
3패
술좌석에서 품위 있는 기생의 가무같은 것은 하지 못하고 잡가나 부르며 내놓고 매음하는유녀(遊女)를 가리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이른바 1패기생으로 분류되었던 기생들이 전통적인 진짜 기생들로서,
이들은 흔희 약방기생, 상방기생으로 불리는 이들입니다.
약방기생과 상방기생은 정부의 녹을 받던 전문직 여성들로,
약방기생은 평상시 약방에서 의녀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국가행사가 있을때는 노래를 하고 가무를 추던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상방기생은 침방에 소속된 여성들로, 이들또한 평상시에는 침방에서 침모로서의 임무를 수행하였고
마찬가지로 국가행사시에 노래를 하고 가무를 추던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약방기생이 상방기생보다 더 높이 평가되었으며,
이들은 공노비중에서 어린나이에선발되어 장기간에 걸쳐 의술, 침술, 창, 가무등을 교육받은 전문직 여성으로서
왕실에 소속되어 국가의 녹을 먹는 공식적인 공무원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신료는 물론이고 왕족조차도 이들에게 성관계를 요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기생들은 궁녀와는 달리 궁밖에서 출퇴근하였으며,
혼인도가능하였고, 일정나이가 지나면 퇴직하였습니다.
이들이 정식 기생입니다.
이 외에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대가집등의 잔치에 불려다니는 기생들은 이패기생입니다.
은근자, 은근짜라 불리던 이들은
양반대족의 잔치등에 불려다니며 창가가무를하였고,
은밀히몸을 팔기도 하여 '은근히 몸을 파는 자녀'라는 뜻의 은근자로 불렸는데,
지방관아소속의 관기나 사기들이 모두 이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들또한 궁실의 정식기생과 같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창과 가무, 글월, 기예등을 익혔기 때문에 신분적으로는 천민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지식인이었습니다.
조선의 여성문화를 이끈것이 이들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조선후기의 화려하고 짧은 저고리와 풍성한 치마, 크고 화려한 머리장식등, 여성 유행을 주도했던 이들이 바로 이들 이패기생들이었습니다.
그 외에 조선 후기 삼패기생으로 분류된 병돌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창가 가무는 제공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몸을 파는 이른바 윤락녀들로,
실제 조선시대에는 이들이 스스로를 일컬어 기생이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
기생은 이름 그대로 '재주를 가진 자"의 뜻을 가지는 정부의 녹을 먹는 전문직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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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울 지역의 기생은 대개 장악원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악기와 가무를
교습하였고, 때때로 궁중의 연회에 동원되었으며, 공적인 근무일 이외에는
자신의 사사로운 영업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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