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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3.28

백정이라는 계급은 노비계급에 속하나요?

백정이라는 계급은 노비계급에 속하나요?

사극 드라마를 보는데 백정들보고 너희는 노비만도 못한놈이들잖아 라는 대사가 있어서요. 암묵적인 신분제도 속 또 다른 신분제도가 만들어져있던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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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순금킹 시계퀸
    순금킹 시계퀸23.03.28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민 이었습니다.

    고려(정확히는 조선 전기)까지 백정은 일만 농민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려 후기에 양수척이라 불리던 북방민족 출신의 귀화 외국인들이 부랑생활을 하며 도축업, 광대와 같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이들은 관청이나 마을을 노략질하는 경우도 많아 당시 민중들의 불만이 컸다고 합니다. 조선이 건국된 뒤에는 대부분 도축업에 종사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다가 세종때에 와서 이들을 평민으로 대우하기 위해 백정에 편입시켰습니다. 하지만 양수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던 민중들은 백정으로 편입된 양수척을 따로 신백정이라 불렀고, 결국 백정이라는 말은 이 신백정들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백정(白丁)은 고대부터 내려오던 한반도에 있었던 계층에 대한 호칭입니다. 현대의 인식으로는 옛날에 소나 돼지 등 동물을 잡고 해체해서 파는 일을 했던 소위 도축업자로서, 조선시대에는 평민 하류에 속해 천민인 노비보다 사회적 인식이 나빴으며, 조선 전기 중대한 사회문제로 취급받았습니다. 때문에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백정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함부로 도축업자 또는 관련 종사자를 이따위 멸칭으로 부르면 매우 큰 실례이니 조심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도축, 발골, 정형을 담당하는 사람이 역사적으로 백정이라고 불린 것은 조선시대 세종 이후의 일이었다. 그전에는 백정은 일반 백성을 의미하는 단어였으며 조선 세종 이후 백정이 다른 뜻으로 바뀐 후에도 도축업자가 백정일 수는 있었지만 모든 백정이 다 도축업자는 아니었다. 또한 백정이 아닌 양인 도축업자도 있었으니 모든 도축업자가 백정도 아니였다. 도축업자는 백정의 일부였으며 백정은 도축업 이외에도 다른 직업군을 포괄하고 있는 다른 의미의 단어였다. 엄밀히 따지면 직업군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라 혈통 혹은 신분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출처: 나무위키 백정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백정(白丁)은 고대부터 내려오던 한반도에

    있었던 계층에 대한 호칭이다.

    현대의 인식으로는 옛날에 소나 돼지 등

    동물을 잡고 해체해서 파는 일을 했던 소위

    도축업자로서, 조선시대에는 평민 하류에

    속해 천민인 노비보다 사회적 인식이

    나빴으며, 조선 전기 중대한 사회문제로

    취급받았다.

    -출처:나무위키


  •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세종시대 도살자들도 천민에서 평민으로 올려주었습니다. 그때 평민을 백정이라 불렀는데 평민들이 도살자들은 천민이라며 도살자를 백정으로 평민은 양민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굉장히 차별 받았죠

    백정은 주로 외부에서 유입된 유목민 출신들이라 가장 천하게 여긴 계급 중 하나였습니다.

    팔천이라고 천민도 8개로 분류되었는데, 그중 광대와 백정이 제일 아래.입니다.


  • 조선시대 계급 구조는 4단계입니다.

    양반, 중인, 상인, 천민, 이렇게 4단계입니다.

    백정은 천민 계급에 속하며, 노비도 천민 계급에 속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정은 고대부터 내려오던 한반도에 있던 계층에 대한 호칭으로 현대의 인식으로는 소나 돼지 등 동물을 잡고 해체해서 파는 일을 했던 도축업자로, 조선시대에 평민 하류에 속해 천민인 노비보다 사회적 인식이 나빴으며 조선 전기 중대한 사회문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도축, 발골 등을 담당하는 사람이 역사적으로 백정이라고 불린 것은 조선시대 세종 이후의 일로 그 전에는 백정은 일반 백성을 의미했습니다.

    즉 백정은 혈통 , 신분을 지칭하는 의미입니다.

    조선 초 세종은 국가체제 정비 과정에서 양수척 등을 양민화하여 국력을 증진하고 동화시키려 했는데 이런 의미에서 양수척 화척을 백정이라고 부르게 하면서 적극적인 정착유도정책을 꾀합니다.

    문제는 양수척 화척의 생활상이 일반 농민과 달랐는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말을 타고 유랑하던 집단을 강제로 정착을 시키자니 개간된 땅은 부족하고 농사일은 익숙하지 않고 말을 타고 무기를 휘두르던 버릇이 있으니 강도질의 유혹에 빠지고 , 기존의 거친 생활상으로 인해 범죄에 대한 거부감도 약한 편이었으니 화척들은 백정에 편입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기존의 백정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나왔습니다.

    백정들은 자신을 구백정이라 부르고 화척들은 신백정으로 구분해 동화되는 것을 꺼리고 이로 인해 기존의 농민들과 신백정들의 관계는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시간이 흘러 구백정은 백성이라 칭하고 백정이란 말은 화척들만을 칭하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본적으로 백정은 노비보다는 높은 계급이였습니다.

    하지만 가축을 도축을 하기 때문에 천하게 본것이 있었습니다.


  • 백정은 고려시대 수척.양수척.화척이라 불리었다가 조선 초에 백정이라고 바꿔어 불리었다. 이들은 주로 도축업을 하는 자로서 천민인 노비보다 사회적 인식이 나빴다.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일반 양민을 백정이라고 불렸고 조선시대에는 백정을 소 나 돼지를 잡는 천한

    사람을 일컷는 말이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정이라고 하는 것은 호적(戶籍)에서 제외된 천민계급으로 가축류의 도살을 주업으로 하는 한편 부업으로 고리를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백정이란 명칭은 원래 수(隨)나라에서는 백성을 일컫던 말로서 고려에 전래되었을 당시는 그대로 백성을 가리키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고려에서는 백정에 대하여 일정한 직업도, 일정한 토지도 주지 않았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군호(軍戶)에도 편입시켰고, 또 역정(驛丁)에도 보충하여 이들에 대해서만은 일정한 토지를 주기도 하였으므로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천인이라 하더라도 가장 우대받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백정이 평민 하류에 속해 천민인 노비보다 사회적 인식이 나빴습니다. 사회적으로 천대 받는 대신 납세의 의무가 적어서 일부러 백정으로 편입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정은 특수 행정 구역인 향, 부곡, 소에서 살고 있는 주민 정도로 생각됩니다.

    역시 노예나 백정둘다 하층계급인거는 똑같으나 굳히 비교하자면 노예가 더 낮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정은 조선시대의 사회 계층 중 하나로, 노비와는 다른 계급입니다. 백정은 노비와 마찬가지로 귀족과 양반들의 지배 아래에서 살아가며,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 등에서 제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노비와 달리 백정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으며, 일반적으로 노비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웠습니다.

    백정은 일종의 자유 노동자로, 농업 노동, 상인, 공장 노동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정은 귀족들의 지배와 차별에 직면하였으며, 사회적 지위나 권한, 교육 등에서도 제한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백정은 노비보다는 자유로웠지만, 일종의 하층 계층으로서 삶의 여건이 불안정하였습니다.

    암묵적인 신분제도 속 또 다른 신분제도가 만들어져있던 것은 맞습니다. 백정과 노비는 모두 하층 계층으로서 차별과 제한을 받았지만, 그들 간의 지위와 권한, 자유도 등에서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계층적 구조는 조선시대의 사회 제도와 문화적 전통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