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이 폭군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폐모살제"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계모인 인목대비를 폐위하고, 이복동생인 영차대군을 강화도에 유배시켜 죽게하였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유교적 가치관에서 패륜이라는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광해군은 집구너 기간 동안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정적을 무자비하게 숙청했습니다. 예를 들어 1613년 계축옥사를 통해 인목대비의 아버지 김제남을 사사하고 그의 일족을 처형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무리한 토목 공사와 북인 위주의 권력 기반으로 고립을 자초했습니다. 또한 외교적 측면에서도 중립외교는 명나라를 배신하는 행위로 간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