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납공노비는 매년 일정액의 신공을 바쳐야 했다
이들이 바치는 신공은 1408년(태종 8)에 추포(麤布)로서 노는 5필, 비는 4필로 규정하였다. 1425년(세종 7)에는 이를 대폭 삭감, 노는 정포(正布) 1필과 저화(楮貨) 2장, 비는 정포 1필과 저화 1장 또는 전(錢)으로 노는 100문(文), 비는 50문을 바치도록 하였다.
입역노비, 흔히 역졸(驛卒)이라고도 한다. 역노비는 삼국시대부터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문헌기록상 고려시대부터 나타나고 있다. 그 뒤 조선시대에 이르러 전운노비(轉運奴婢)와 급주노비(急走奴婢)로 나뉘어졌다. 전운노비는 역에서 사신의 복물(卜物:말에 실어 나르는 짐)이나 진상(進上)·공부(貢賦) 등의 관수품을 운반했고, 급주노비는 중국 송대의 체포제도(遞鋪制度)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