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막걸리는 언제부터 만들어졌나요?
우리나라 전통술인 막걸리는 언제부터 만들어졌나요?
우리나라 막걸리의 역사가 알고싶습니다.
언제부터 누가 만들었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막걸리의 역사는 막걸리가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 때 부터입니다. 이달충의 시에 '뚝배기 질그릇에 허연 막걸리'라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예나 지금이나 서민의 술로서 막걸리 이미지는 불변임을 알 수 가 있습니다.
곡주가 익어 청주와 술 지게미를 나누기 이전에 막 걸른 술이라 해서 막걸리라고합니다. 문헌에는 탁주, 백주, 박주라고도 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막걸리는 삼국 시대때부터 있었습니다.
보통 농주라고 합니다.
한때 쌀이 부족하여 집에서 몰래담는 밀주담는 것을 단속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이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막걸리의 기원과 역사.
우리니라에서 막걸리를 정확히 언제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곡류를 이용한, 막걸리와 비슷한 곡주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시작됩니다. 고려 때에는 막걸리용 누룩을 배꽃이 필 때에 만든다고 하여 이화주라고도 하였고 맑지 않고 탁하다고 해서 막걸리를 탁주라고도 불렸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많이 먹는 술로 식량 대용 또는 갈증 해소 음료로서 농부들이 애용해 왔으므로 농주라고도 불렸습니다.
막걸리는 삼국사기에 미온 주로 소개한 기록이 있고 , 고려 때의 고려도경 에는 "왕이나 귀족들은 맵쌀로 만든 청주를 마시는 반면 백성들은 맛이 짙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 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지방별 문중별로 다양하게 발전시킨 독특한 막걸리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전통주인 막걸리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시대의 문헌에 탁주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때부터 막걸리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시대 때 문헌에 탁주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송나라 서긍의 《고려도경》에 '(고려의) 서민들은 맛이 떨어지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고 기록된 술 역시 탁주로 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이르러 수많은 양반 종가 가문에서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가양주가 있었는데 각각의 세부적인 재료와 비율은 제각각이나, 이들의 공통점은 쌀이나 보리와 같은 곡식으로 밑밥을 지어 증류한 후 맑은 물을 걸러내는 식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어보면 '흉년에 나라에서 금주령을 내렸을 때 어기는 백성이나 양반이 있다면 잡아다가 엄하게 다루어야 한다…'라고 쓰여 있으나, 뒤에는 어쩔 수 없다는 투로 '…하지만 탁주는 요기도 되는 관계로 그냥 넘어간다…'고 쓰고 있다. 같은 곡주 계열인 맥주 또한 서양에서는 '액체 빵'과 같이 식사 대용으로 취급했던 것과 같은 대접인 셈.
이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술 찌꺼기(지게미)는 비싼 술을 사먹지 못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술 대신 먹기도 하고 술빵(술떡)으로 만들기도 하였는데 여기에 좀 더 술과 같은 모양을 만들고자 하여 술 찌꺼기에 남은 밑술을 붓거나 곡식 가루를 섞어 한 번 더 발효시킨 술을 일반적인 탁주, 즉 막걸리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맛은 청주에 비해 떨어지나 가격이 저렴하여 농민들까지 전국적으로 마시는 국민주가 되었다.
대한제국 말과 일제강점기에 거치는 기간 동안 세수 확보를 위해 주세령과 면허제를 시행하며 자가용과 판매용을 구분하여 자가용에 더 높은 세율을 매겼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가양주 문화가 쇠퇴하고 집안 대대로 간직하여 새 술을 담글 때마다 첨가했던 옛 술의 명맥이 끊어지게 됐다. 현재의 이강고, 죽력고와 같은 전통주는 남아 있는 문헌을 토대로 부활시킨 것이다. 일부는 밀주 형태로 살아남아 계속 이어진 전통주도 있다. 다만 이 시기 남한 지역을 중심으로 자본 투자와 근대적 생산 체계를 갖추고 총독부의 면허를 받은 양조 업체들이 등장하며 이들 업체들의 탁주가 시장 점유율 70%를 자랑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일본제국의 전시경제체제가 시작된 1930년대 후반부터 쌀이 전략물제로 통제되며 위기를 맞이하였고, 6.25 전쟁으로 생산 설비와 인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로도 계속 한국 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주종 지위를 유지했으나, 1965년 주세법 개정으로 수출용을 제외한 주류에 쌀 사용이 금지되며 보리와 밀 등을 사용하며 크게 인기를 잃고 희석식 소주와 부가물 라거에 자리를 내줬다. 1977년 탁주에 쌀 사용이 허가됐으나 아스파탐, 설탕, 보리, 밀 등 부가물 함량이 높은 저질 막걸리들이 지속적으로 양산되며 반세기에 가까운 침체기를 보내야 했다.
막걸리는 본래 쌀로 만드는 양조주인데 1960~70년대에 쌀로 술 만드는 것이 금지가 되자 어쩔 수 없이 밀가루나 보리가루로 만든 밀막걸리, 보리막걸리 시기가 있었으나 금지가 풀리고 나서부터는 점차 쌀함량을 높이며 현재는 웬만한 막걸리 업체들은 들어가는 곡류에 대해서는 100% 쌀을 사용하고 있다.출처: 나무위키 막걸리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막걸리는 탁주의 범위에 속하는 주류인데,
고려시대 문헌에서 탁주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송나라 서긍의 고려도경에 서민들이 맛이 떨어지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 고 기록된 술 역시 탁주로 보고있고, 조선시대 이르러 수많은 양반 종가 가문에서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가양주가 있는데 각각의 세부적인 재료와 비율은 제각각이나 이들의 공통점은 쌀이나 보리와 같은 곡식으로 밑밥을 지어 증류한 후 맑은 물을 걸러내는 식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자료에 따르면 막걸리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다고 합니다.
막걸리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막걸리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막걸리를 미온주(美溫酒)로 소개한 기록이 있고, 고려 때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왕이나 귀족들은 멥쌀로 만든 청주를 마시는 반면 백성들은 맛이 짙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는 기록이 있다.
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sojunMakgeoll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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