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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천사1004
Jy천사100423.12.07

강조는 고려의 반역자인가요? 고려의 충신인가요?

안녕하세요 고려시대 강조장군은 참 해석하기 좀 어려운 분이라 생각됩니디 임금을 시해했지만 고려의 충신이 될려고 한사람이라생각되는데요 역사학계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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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판단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 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으 정말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 입니다. 강조는 황해도 출신으로 고려 초에 벌어졌던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서북면 도순 검사에 오른 인물이고 당시 목종은 병들어 누워있었고, 목종의 친어머니인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사통하여 낳은 아들을 다음 왕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술수와 편법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강조는 대량원군 순을 현종으로 즉위시키고, 목종과 천추태후를 충주로 유배를 보내는 척 하다가 길에서 죽여 버렸는데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기구를 개혁하고, 이부상서참지정사에 올르며 분명 목종을 위해 군대를 움직였던 강조였지만,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해지자 왕을 죽이고 최고의 권력을 잡았는데 이것만 보면 역적이지만 그런데 요 성종의 포로가 되었을 때 항복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 것을 보면 충신 입니다. 왕을 죽였으나 나라를 배반하지 않았기에 크게 보면 강조는 충신이라고 보여 집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목종이 강조를 이용하여 김치양을 제거하려 하였으나 김치양의 계락으로 잠시 주저하지만 결국 정변을 일으켜 목종과 긴치양을 제거하고, 천추태후를 유배보내고 대량원군을 옹립하였습니다.

    강조의 정변 이후 1010년 거란이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강조는 통주(지금의 평안북도 선천군)에서 30만의 군사로 거란군에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고 사로 잡힙니다. 거란 황제 성종은 강조의 인품을 보고 자신의 신하가 되어 권력을 누리자는 제안을 권유했으나 강조는 끝끝내 거절하다 처형되었습니다.

    강조는 반란의 명분을 위해 목종을 제거하고 스스로 왕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았고, 고려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사에서는 그를 반역 열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정변을 일으켰고 임금을 폐위, 시해한 것이 가장 크고 목종에게 멋대로 시호, 묘호, 능호를 올린것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유교를 받아들인 조선에서 삼강오륜을 저지른 그를 위인으로 우대하지 않으며 고려사에서 죽을때 비로소 목종의 혼령에게 잘못을 빌었다는 식의 서술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010년(현종 1)에 일어난 강조정변은 고려 시대 어쩔 수 없이 일어난 반역행위였습니다. 목종의 부름을 받고 병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향하던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는 도중에 왕이 죽었다는 거짓 소문을 듣게 되고 천추태후와 김치양 그리고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을 처단하기 위해 진군을 계속합니다. 궁으로 들어왔을 때 목종은 살아있었으나 병세가 완연하고 죽음을 앞두고 있었기에 목종과 천추태후를 유배보내고 유배 도중 목종은 시해됩니다. 그리고 김치양과 그의 아들을 살해했으며 목종의 사촌 동생 대량군을 왕위에 옹립시킵니다. 스스로가 왕이 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은 점이 사리사욕을 위한 정변이 아니였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요나라 성종은 40만 대군을 이끌로 2차 침입을 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강조와 같은 경우에는

    당연히 고려의 역사에 있어서

    반역자라고 볼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