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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양천제도와 반상제도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세요.

조선의 사회 신분을 양인과 천민으로 구분하는게 양천제도라고 하던데요. 그당시 지배층이 농촌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과 명분을 성리학에서 찾은게 민본주의 사상이라는데 궁금한게 이 당시 양천제도는 법제화를 시켰고, 반상제도는 일반화를 시켰다는데 이 제도의 자세한 내용을 알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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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천 제도는

    법제적 구분으로 갑오개혁(1894) 이전까지 조선사회를 지탱해 온 기본적 신분 제도였다. 양인은 과거에 응시하고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자유민으로서 조세·국역 등의 의무를 졌다. 천민은 비자유민으로서 개인이나 국가에 소속되어 천역을 담당하였다.

    반상 제도는

    실제적 구분으로 관직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던 양반은 세월이 흐를수록 하나의 신분으로 정착되었다. 양반 관료들을 보좌하던 중인도 신분층으로 정착되었다. 지배층인 양반과 피지배층인 상민 간의 차별을 두는 반상 제도가 일반화되었다. 이로써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신분 제도가 정착되었다.

    조선 시대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으나 신분 이동이 가능하였다. 법적으로 양인이면 누구나 과거에 응시하여 관직 진출이 가능하였고 양반도 죄를 지으면 노비가 되거나 경제적으로 몰락하여 중인이나 상민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려사회에 비하여 개방적이었지만 지배층인 양반과 중인, 피지배층인 상민과 천민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신분 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양천 제도와 반상 제도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2007. 12. 15., 한림학사)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 양천제가 법제화 된것은 조선 초기, 양인이 대두한 것은 고대사회부터지만 법제적으로 천인과 구별해 사용된것은 조선 초기로 사대부가 집권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지향하게 되었고 국가 기반을 확충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천인 이외의 사람들에게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여 천인이 아닌 자는 모두 양인화하고 이들에게 벼슬할 수 있는 권리 보장과 기회확대를 부여했고 국가에 대한 보편적인 신역을 부과하는 체계를 마련하여 정착시켰습니다.

    기본적으로 양인은 자유인이며 공민으로서 기본권을 보장 받고 벼슬길에 나갈수있었지만 천인은 비자유인으로 각종 구속을 받았고 양인이 거느리는 재산으로 취급되면서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한 존재였고, 벼슬길을 원천적으로 봉쇄되어있는 반면 국가에 대한 의무에서도 양인은 남자에 대해 역이 부과되나 천인은 남녀 구분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양천제의 법제적 기본 틀은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지만 16세기 이후 양반 중심 상민 천민의 신분계층이 형성되며 계층간의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었습니다.

    반상제도는 실제적 구분으로 관직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던 양반은 세월이 지날수록 하나의 신분으로 정착되며 양반 관료들을 보좌하던 중인도 신분층으로 정착됩니다. 지배층인 양반과 피지배층인 상민 간의 차별을 두는 반상제도가 일반화 되어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신분제도가 정착되게 됩니다.

    조선시대는 신분제 사회였으나 신분 이동이 가능해 법적으로 양인이면 누구나 과거에 응시해 관직 진출이 가능했고 양반도 죄를 지으면 노비가 되거나 경제적으로 몰락해 중인이나 상민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고려사회에 비해 개방적이었지만 지배층인 양반과 중인, 피지배층인 상민과 천민이 존재하는 것은 신분사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천 제도와 반상 제도

    조선은 사회 신분을 양인과 천민으로 구분하는 양천 제도를 법제화하였다. 양인은 과거에 응시하고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자유민으로, 조세, 국역 등의 의무를 지녔다. 천민은 비자유민으로, 개인이나 국가에 소속되어 천역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천제의 원칙에만 입각하여 운영되지는 않았다.


    관직을 가진 사람을 의미하던 양반은 세월이 흐를수록 하나의 신분으로 굳어져 갔고, 양반 관료를 보좌하던 중인도 신분층으로 정착되어 갔다. 그리하여 지배층인 양반과 피지배층인 상민 간의 차별을 두는 반상 제도가 일반화되고,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신분 제도가 점차 정착되었다.

    -출처:우리역사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