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
요나라 거란이 침입하던 시기에는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희의 담판,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기억 되듯이 두 사람의 임팩트가 워낙에 강했고, 귀주대첩은 오랜 거란과의 전쟁을 끝맺었다는 사실에서 더 중요도가 높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양규 장군이 했던 수많은 전투와 포로를 구출하는 구국의 활동이 결코 작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순신 장군과도 비교한다면 또 다른 부분도 있으리라 봅니다. 절대적인 군사력을 지니고 한반도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임진왜란의 시기에 이순신은 제대로된 지원도 없이 일본의 강력했던 수군을 상대로 어찌보면 조선의 대표로서 전쟁을 치루었으니 말이죠.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누구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는 표현 보다는, 누구의 목숨이 더 빛났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닌 조금더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지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