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던 것은 골품제(骨品制)와 관련이 있습니다. 신라에는 골품제도가 있었고, 이 중 성골(聖骨)은 아버지 집안과 어머니 집안이 모두 순수한 왕족(박, 석, 김)으로 신라의 가장 으뜸가는 신분층이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성골은 28대 진덕여왕 때까지 서로 같은 핏줄끼리 결혼하며 왕위를 독점하였습니다. 선덕 여왕은 진평왕의 맏딸인데,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성골로 왕위를 이을 사람은 선덕 여왕뿐이었습니다. 뒤를 이은 진덕 여왕 역시 성골 남자가 없었기 때문에 왕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던 이유는 신라 여성들이 특별히 자유롭고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골품제라는 신분 제도 안에서 적당한 자격을 갖춘 인물을 찾다 보니 여왕이 즉위하게 된 것입니다. 신라는 꼭 남자가 왕위를 잇는다는 생각보다는 핏줄이 가장 중요한 임금의 자격이었기 때문에 고려나 조선에는 없는 여왕이 셋이나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자가 없으면 임금될 사람을 방계에서 찾기보다는 공주가 더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