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장군의 변절이 있는데 이는 1923년 만주 영사관에서 귀순설을 유포한 것으로 독립신문과 동아일보 등을 통해 반론 기사로 곧바로 반박되었습니다. 이는 김좌진을 두려워한 일본이 우리 민족을 분열식키기 위한 책동에 불과합니다.
동아일보 1923년 4월 21일 기사에 의하면 "대련일보 사월일일호에 게재된 김좌진귀순신립설은 허무근한 사실임으로 김좌진씨는 이와 가치 허무맹랑한 풍설을 세상에 전파함에 대하야는 도저히 용서치 못하겟슴으로 곳 상당한 방법으로 처리한다고 선언하얏다더라(함비번)"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다만 자유시 참변 이후 김좌진 장군은 반공 노선이 강화되어 공산주의자들에게 적대적이었을 것이며, 군정부 신민부의 독립운동 자금 마련 과정에서 빈주현 동포들과의 반감에서 암살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